[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84. 체육회장 사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체육회장 시절 체육회 임원들과 함께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나는 만신창이가 돼 돌아왔다. 선수단 성적도 좋지 않았고, 김동성 사건으로 여론도 악화돼 있었다. 김동성 사건은 세계빙상연맹과 IOC 중재재판소로 넘어갔다. 훨씬 후에 김동성의 실격을 선언한 호주 심판이 정직됐다는 말을 들었다.

귀국해서 보니 김동성은 영웅이 돼 있었고, 오노는 ‘천하에 나쁜 놈’이었다.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욕을 먹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오노는 부딪치지 않으려고 멈칫했을 뿐이다. 김동성을 실격시킨 것은 호주 심판이었다.

한동안 시끄럽던 한국 언론도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졌다. 이제 예정했던 대로 대한체육회장 자리를 물러날 때가 됐다. 항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 정치인이 차기 체육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2002년 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대한체육회 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체육회장으로서 마지막 주재하는 회의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순서에 따라 예산안과 사업계획안 등을 모두 통과시켰다. 폐회 직전에 “나는 이제 할 일을 다했으니 대한체육회장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아무도 영문을 몰랐다.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었지만 대통령과의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박상하 부회장은 불참했고, 그 자리에 있던 부회장 중에서 가나다 순으로 가장 앞선 김정행 부회장을 직무대행으로 지명하고 자리를 떴다.

안덕기 승마회장 등 49개 경기단체장이 사퇴 불가, 유임 결의를 두 번이나 발표했다. 태릉선수촌에서도 같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또 언론에서는 ‘수렴청정’이니 ‘곧 복귀’라니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체육회장에서 물러난 나는 체육계에 투신한 뒤 IOC 위원장에 도전하기까지의 여정을 정리한 『세계를 향한 도전』이란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여의도 63빌딩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대표선수 전원을 초청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익을 선양한 선수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내 나름대로의 송별연이었다. 처음으로 대한체육회장 3선에 성공하고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불명예 퇴진이었지만 이렇게 대한체육회·KOC와 작별을 고했다.

직무대행인 김정행 부회장은 거의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었다. “빨리 체육회장 선거를 해서 체육회를 정상화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차기 체육회장에는 김정행 부회장과 당시 여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이연택, 그리고 최만립 등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선거 결과는 역시 이연택이었다. 행정관료 출신으로 총무처 장관을 지낸 뒤 체육진흥공단 이사장, 2002 한·일 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 등을 거쳐 대한체육회장까지 됐다. 이연택 회장은 임기를 마친 뒤 후임인 김정길 회장이 지난해 중도 사퇴하자 다시 출마해 두 번째 대한체육회장을 맡는 영광을 누렸다.

김운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