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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대법원 外
◆대법원<고법 부장판사>▶수석재판연구관 홍승면▶선임재판연구관 유해용▶사법연수원 수석교수 김시철▶서울고법 김주현(수석) 한승 강영수 김상환 한창훈 김대웅 박정화 이은애 이창형 배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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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신군부가 협의 무시” 12·12직후 강한 불만
1979년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가 12·12 사태를 일으킨 직후 미국 행정부는 한국 신군부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고 한국의 민간정부 수립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사실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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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가 그들을 'FTA 전사'로 키웠다
미국은 세계 최강 외교 대국다운 노련한 협상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한국 협상단도 밀리지 않았다.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 협상단은 이들을 가리켜 "전사(戰士)"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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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국회사무처 外
◇ 국회사무처 ▶미주주재관 이한길 ▶중국 정명철▶일본 이인섭 ◇ 재정경제부 ▶국제조세교육운영센터 파견예정 김규복 ▶기획관리실 기획예산담당관실 황건일▶〃행정법무담당관실 이현승▶총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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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재정경제부 外
◇ 재정경제부 ▶주미대사관 심달섭▶주뉴욕총영사관 장수만▶본부 강권석 ◇ 외교통상부▶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사무총장(파견)이량 ◇ 산업자원부 ▶주영대사관 1등서기관 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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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정희 대통령의 特補團 - 박종홍.함병춘 至誠영입
대통령이 경륜가로부터 지혜를 잘 빌리면 국정에 큰 도움이 된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사들을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해 폭넓게 활용했다. 특보단은'대통령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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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溶植 前외무장관 별세
김용식(金溶植)前외무장관이 31일 오후9시15분 서울송파구풍납동 서울중앙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2세. 1913년 경남 충무에서 태어난 故 金전장관은 지난38년 일본 주오(中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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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別世 金溶植 前외무장관-한국외교 초창기 개척자
김용식(金溶植)前외무장관은 지난 48년부터 81년까지 33년간 외교현장의 가운데에서 한국외교를 진두지휘한 개척자다. 1913년 경남충무에서 출생한 고인(故人)은 일본 중앙대 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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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노씨측 배신이냐 업보냐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간의 우정과 미움은 다른 사람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많은 축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두 사람간의 오랜 관계를 지켜본 사람들간에는 「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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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 총재|고향방문 길 트는 「구호의 대모」|역대 11명중 4명이 총리 출신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정치적 격변기, 각종 재해 때마다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돌봐야하는 「구호의 책임자」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피로 얼룩진 현장, 77년 이리역 폭발 참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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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임대사 정년은 고무줄인가(성병욱칼럼)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하고 수교국가가 구소련 등 동구권까지 확대되면서 우리외교의 지평은 전세계로 확대되었다. 외교의 폭이 넓어지면서 외교관도 늘고,외교관의 꽃이라는 대사·총영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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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대사 유엔가입으로 당당해진 「외교첨병」|유엔대사
유엔결의에 의해 독립되고 정부가 수립된 탓에 초창기에는 거물급,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사람들이 유엔대사에 임명됐다. 우리 외교라는 것이 완전히 대미, 대 유엔외교에 집중됐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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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대사
한일관계에는 늘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져 왔다. 우리는 한자와 불교·도자기문화등을일본에 전해 주었다는 자부심이있지만 임신왜난과 한일합방으로 뼈아픈 침달의 고통을 당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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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조찬서 특강
김용식 전 주미대사는 25일 전경련 국제경영 원이 경제인클럽에서 개최하는 제1회 월례조찬회에서「주변국가의 한반도정책과 한국의 대응전략」주제의 특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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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0)제80화 한일회담 (99)-일의 평화선 인정
한일예비회담이 본격적으로 가동한 56년5월 이후 양측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보인 문제는 이미 지적했듯 일본의 평화선 인정과 대한재산청구권철회 문제였다. 이미 억류자 상호석방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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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5) 제80화 한일회담(84)화해분위기 깨져
북한 인정발언, 회담재개 전망에 찬물 54년12월초 사회당의 지지를 얻어 자유당의 「요시다」 (길전무) 수상으로부터 정권을 쟁취한 민주당의 「하또야마· 이찌로」일본수상은 12월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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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0)제80화 한일회담(59)일본측 대표단|김동조
당시는 「재개한일회담」이라고 불린 제3차 회담은 1O윌6일 상오11시5분 일본외무성 419호실에서 양국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우리측에서는 수석대표에 김용식주일공사, 대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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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2)동사이몽-제80화 한일회담(1)
「한일회담」의 집필을 맡은 현민 유진오박사는 51년 1차 한일회담대표, 50년대말 재일교포 북송반대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가, 민주당정권시절 제5차 한일회담수석대표를 맡아 한일회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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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방한안했으면 미군철수 강행될뻔|밴스 전국무 회고록서 밝혀
【뉴욕=연합】「카터」전미대통령은 재임당시 그의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주한미전투병력철수를 고집했으나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행정부 및 의회지도층으로 부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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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돼서 또 오니 더 기쁘다"
「슐츠」미국부장관 일행이 탄 보잉707 특별기가 북경을 떠나 상해상공을 거쳐 중공관제정보구역에서 바로 한국관제정보구역으로 들어와 김포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시간보다 5분 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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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서 한국인의 힘찬 정신력 재발견
(김용식 올림픽 위원장) ◇약력 ▲1913년 경남 충무 출생 ▲38년 일본 중앙대학교 졸업 ▲80년 미국 미주리대학 명예법학박사 ▲49∼59년 주 홍콩·호놀룰루·일본·프랑스·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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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9)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집필을 마치며
나는 60년2월말 3·15총선거전이 시작될 무렵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일시 귀국하라는 훈령을 받았다. 진해별장으로 귀국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이대통령은『곧 정·부통령선거가 있 으니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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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4)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81)
예비회담에 이어서 열린 제1차 한일회담은 52년4월21일까지 계속되었다. 우리측에서는 예비 회담 때 교체 수석대표였던 신성모씨가 빠지고 김용식 주일대표 부 공사가 교체수석이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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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중의 대사 주미대사
주미대사- 외무장관자리와 함께 외교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오르고 싶어하는 대망의 자리다. 지금은 주미대사를 하다 외무장관이 되면 영전이라고 하지만 초대 장면대사같은 분은 국무총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