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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7) 제80회 한국회담(126)심화되는 북송음모
재일교포-. 정말 한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일제 때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일제에 징용됐던 사람들이거나 일제의 수탈로 인해 생활의 뿌리를 박탈당해 일본으로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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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6)제80화 한일회담(115)
나는 이대통령으로부터 애정에 없던「야쓰기」특사의 기자회견을 주선하라는 지시를 받고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엄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지시에 당혹했던 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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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4)미국의 해석각서-제80화 한일회담(103)
지난회에서 말한 이른바 미국해석각서란 무엇을 뜻하며 왜 나왔는가. 이 경위를 알면 한일관계에 있어 미국의 역할과 존재의 전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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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3》 제80화 한일회담(102)-일의 대한 재산청구권|김동조
이대통령의 재교섭 훈령을 받은 김대사는 본인의 표현대로「염치 불구하고」다시「기시」일본수상을 만나 정치적 절충을 벌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기시」수상은 그의 방미전에 합의본 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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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4)독도 학술조사-제80화 한일회법(83)
우리가 해방이후 독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된 것은 47년께부터였다. 당시 군정청 민정장관이었던 민세 안재홍선생은 한국산악회에 독도에 대한 학술조사를 하도록했다. 제1차학술조사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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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0)제80화 한일회담(79)-김동조
최근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가요가 널리 애창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도 방송을 통해 이 노래를 몇번들었는데 그때마다 나로서는 남다른 감회에 젖게된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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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5)일본의 속셈-제80화 한일회담(74)
회담은 결렬됐다. 그러나 어느 쪽도 끝내기만은 상대방에게 미루고 짐짓 언제든지 회담은 재개될 수 있다는 듯 뒷짐을 지고 있었다. 『상대방이 성의를 보인다면 회담재개에 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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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2)회담재개활동-제80화 한일회담(71)
일본정부는 강경책를 수립하기는했으나 부산에 억류중인 5백여명의 자국민을 팽개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23일 일본외무성이 주일대표부에 보낸 공한은 서슬퍼런 강경책과는 거리가 먼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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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7)구보전망언 여파-제80화 한일회법(66)
일제는 조선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대일강화조약체결 이전에 한국이 독립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변한 「구보따」 일본측 수석대표의 망언으로 시종한 이날의 회의에 대해 A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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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0)제80화 한일회담(59)일본측 대표단|김동조
당시는 「재개한일회담」이라고 불린 제3차 회담은 1O윌6일 상오11시5분 일본외무성 419호실에서 양국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우리측에서는 수석대표에 김용식주일공사, 대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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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조
2차회담이 일본측의 제의로 무기휴회에 들어간 날은 53년7월24일이었다. 여기에서 여담이긴 하지만 기록의중요성을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주중참사관으로 해외근무를 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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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849)-한일회담(제80화)
지금까지 주로 지철근대표의 증언으로 평화선이 태동되기까지의 사연을 대강 살펴보았다. 이가운데 지대표가 관여하지 않았던 외교측면등 몇가지 점에 대해서는 추가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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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4)제80화 한일회담(43)
평화선에 대한 차철근씨의 증언계속이다. 『한일회담이 시작되던 51년 후반무렵 한국수역의 어장에는 한국배 보다 일본어선이 훨씬 많았다. 6·25동란으로 우리 어업은 그나마 명맥이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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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4) 제80화 한일회담(3) 우리측 대표들
이 연재를 쓰기위해 정부가 1965년에 발간한 「한일회담백서」를 보니 만13년8개월간 7차에 걸친 회담에 참여한 우리측 대표의 연인원은 나를 포함해 68명이었다. 자연인으로는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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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찼던 한일회담 줄다리기〃
한일국교정상화의 일본측주역으로 자민당 부총재까지 지낸「시이나·에쓰사부로」(추명열망절) 전 일본외상의 일기와 외교메모를 정리한 『기록-추명열삼낭』이 9백90페이지의 책으로 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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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각료회담|현해탄 사이에 둔 설전16년
내주로 다가온 한일각료회의를 앞두고 현해탄을 가운데 둔 설전의 파고가 높다. 외교상 나오기 어려운 극언이 잇달아 일본측에서 나오는가 하면 우리국민의 대일감정도 그에 따라 만만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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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중의 대사 주미대사
주미대사- 외무장관자리와 함께 외교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오르고 싶어하는 대망의 자리다. 지금은 주미대사를 하다 외무장관이 되면 영전이라고 하지만 초대 장면대사같은 분은 국무총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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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배짱 겸비한 최장수 외무장관|박동진 외무
철군협상·박동선사건등 한미관계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소방외교」의 사령탑에 앉아 최대통령이 세운 최장수외무장관 기록을 경신 28년간 직업외교관으로 닦아온 해박한 실무능력에다 「배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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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투명한 "행정의 관리자"|사무관부터 출발한 침착한 관료출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무관부터 시작한 철저한 관료출신. 75년「12·19」개각으로 김종필씨의 뒤를 이어 최초의 관료출신 총리로 탄생됐을 때 비정치성때문에 최 총리 내각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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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개발공 사장|김동조씨를 임명
정부는 27일 한국석유개발공사 사장에 김동조 전외무장관을 임명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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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외상회담 내 25일께 개최
#한미 두나라는 김동조씨 문제 등 한미현안을 빠르면 9월초까지 매듭짓고 오는 9월25일께 박동진 외무장관과 「밴스」 미국무장관의 외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박동진 외무장관은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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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조씨 질문서 주한 미 대사관 도착
【워싱턴=김건진 특파원】김동조씨에 대한 미 하원 윤리위의 질문 문서가 이미 국무성을 통해 주한 미 대사관에 도착했으며, 박동진 외무장관과 「글라이스틴」미 대사가 최종 절차문제에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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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조씨 동의 문제만 남아
박동진 외무장관은 16일 하오 「글라이스틴」주한 미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김동조씨의 미 의회 협조 절차문제에 관해 1시간10분간 요담했다. 외무부 당국자는 회의에서 김씨 문제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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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조씨 협조방법에 합의
한 미 양국은 김동조씨 미 의회 증언문제에 대해 김씨의 사신에 의한 협조방식에 합의함으로써 박동선씨 사건으로 빚어진 1년 월 10개 월 간의 미 의회 한국「로비」사건은 완전히 매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