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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명암드리운|70년대 한국의 대사건

    70년대는 한두마디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격동의 한 세대」였다. 선량한 시민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와우「아파트」붕괴사건(70년 4월8일)으로부터 시작해 최규하 10대 대동령취

    중앙일보

    1979.12.22 00:00

  • 박대통령시해사건 군재가남긴 기록

    박대통령시해사건의 공판은 역사의 한장(장)을 매듭짓는 역사적인대재판이었다. 재판의 그러한 성격 때문이었는지 공판사장 많은 새기록들을 남겼다. 하루에 12차례의 휴정, 사건발생 55

    중앙일보

    1979.12.20 00:00

  • 군재증인심문|만천석 분위기 않좋았으나 감정격화 안돼|차가 "남군, 남군" 찾았지만 무서워서 도망

    ▲10월26일 당시직책은. ―궁정동 중정식당관리인이었다. ▲김재규피고인이 대통령을 시해했을때 현장에 있었는가. ―식당에 있었다. ▲검찰진술과 사법경찰간에게 제출한 자필진술서는 모

    중앙일보

    1979.12.18 00:00

  • 또박또박 증언…그 현장의 두 증인

    15일 열린 박정희 대통령시해사건관련 육군본부 계엄 보통 군법회의 7회 공판. 증인은 그날 만찬석에서 시해사건을 시종 목격한 손금자 (가명) ·정혜선 (가명) 양. 손 양은 자주색

    중앙일보

    1979.12.17 00:00

  • 정승화 전 육참총장 진술조서 제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재판장 김영선 중장, 심판관 유범상·이호봉·오철소장, 법무사 황종태 대령)는 17일 상오10시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8

    중앙일보

    1979.12.17 00:00

  • 첫총탄맞고 쓰러졌던 차. "난 못일어날것 같애"|대통령에 2탄 쏘았을때 "이젠 죽었구나" 생각

    ▲법무사=증인신문에 들어간다. 정혜선·손금자양(모두가명) 나왔는가. 증언대앞으로 나오시오. (정양「코트」를 벗고 증인에 대한 인적사항을 확인. 정양은 또 생년월일과 주소를 거의 들

    중앙일보

    1979.12.17 00:00

  • 군재일문일

    김계원 보충신문 붉은 색의 양탄자가 깔려있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마루였던 것 같다. 총성이 울린 후 불이 꺼지고 김재규 피고인이 다른 총을 가지러 나갔을 때 피

    중앙일보

    1979.12.15 00:00

  • 재판기록 열람 요구 김재규 피고 국선변호인

    김재규·김계원 등 대롱령시해사건 관련 피고인 8명에 대한 6회 공판이 14일 상오10시 육본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육본계엄보통 군법회의재판부 (재판장 김영광 중장, 심판관 유범상·

    중앙일보

    1979.12.14 00:00

  • 이기주 변호신문

    가족관계는.(안동일변호사) 노모(69)·처·딸(4)과 8개월 된 아들이 있다. 어머니는 신앙촌에 거주하며 매월 4만원씩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 「시온」고교 2년 중퇴 후 해병대에

    중앙일보

    1979.12.13 00:00

  • 박선호등 군재 1문1답

    > ▲가족은. -처와 아들둘 4식구다. ▲학교는. -고양중 2년 수료. ▲특기는. -보병이었다. ▲정보부에 가기전 무슨일을 했는가. -사회경력은 없다. ▲생활정도는. -겨우 벌어먹

    중앙일보

    1979.12.13 00:00

  • 군재 일문일답

    그분들이 온 것을 김재규 피고인에게 동조, 또는 협력하기 위해 온 것으로 알았는가. 「그냥 온 것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 부장은 나에게 항상 바른말만 해왔기 때문에 그

    중앙일보

    1979.12.13 00:00

  • "대통령·부장·실장은 피신했다"는 말들어 김태원|총성나자 차고위 지붕서 자체경비 맡아 유석술

    ▲피고인의 중앙정보부직잭은. -경비원이다. ▲피고인이 중앙정보부에 재직한 기간은. -76년10월14일부터 근무해왔다. ▲궁정동분관에는 언제부터 근무했는가. -지난 10월8일부터

    중앙일보

    1979.12.12 00:00

  • 박선호등 군재 1문1답

    ▲중앙정보부에서의 직책은 -운전직이다. ▲누구 차를 운전했는가 -박선호의전과장 차를 운전했다. ▲차종은. - 「제미니」 였다 ▲주 임무는. -식당용 부식구입이었다. ▲박선호피고인

    중앙일보

    1979.12.12 00:00

  • 군 재 일문일답

    김재규 피고인이 승용차 안에서 상의를 벗어 달라고 했는가. 그렇다. 차를 타고 5백m 쯤 갔을 때 부장이『자네 상의 좀 벗어주게』 라고 말해 두벌 갖고 왔던 옷 중 하나를 주었다.

    중앙일보

    1979.12.12 00:00

  • 김계원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

    (10일하오 4시19분 속개) 이병용변호인이 『검찰관이 장장 4시간에 걸쳐 직접심문을 했다. 변호인이 밝히고 싶은 것도 자세히 밝혔다. 반대 심문에 들어가기 전에 평소 학교선배로서

    중앙일보

    1979.12.11 00:00

  • 김재규등 공판

    김재규피고인은 이날 하오 공판이 속개되자 『저를 위한 전변호인의 변론을 받지 않고 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김피고인은 하오2시4분 재판장이 공판속개를 선언하자

    중앙일보

    1979.12.11 00:00

  • 검찰관과의 1문 1답|김계원의 법정진술

    ▲정본을 2년 수료한 뒤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는가. -예. ▲언제 준장에 진급했는가. -1950년이다. ▲그 뒤에 거친 요직은? -포병감·사단장·육본정보참모부장·군

    중앙일보

    1979.12.10 00:00

  • 김재규의 법정진술

    김피고인에 대한 11문답은 별항과 같다. ▲피고인의 직책은?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재직기간은? -76년12월4일부터 79년10월26일까지다. ▲피곤인은 박대통령과 차실장을 살해한

    중앙일보

    1979.12.10 00:00

  • 휴정 다섯차례끝에 사실심리|재판부 기피·군재의 위헌여부 제청신청등 기각

    김재규·김계원등 박대통령시해사건관련피고인8명에 대한 제2회 공판이 8일상오10시3분 육본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재판부 (재판장 김영선중장)심리로 열렸다. 변호인

    중앙일보

    1979.12.08 00:00

  • 김재규등 피고인 8명에 대한 대통령시해사건 공소장 전문

    피고인 김재규는 본적지에서 김형철의 장남으로 출생, 안동농림증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국 특별 간부후보생으로 일본군에 종군하다가 8·15해방으로 귀국, 선산국민학교등 교사직을 거쳐 육군

    중앙일보

    1979.12.04 00:00

  • 김재규등 8명 군재시작|밤8시50분 총리에 "싸움하다 오발했다" 김재규 허위보고

    김재규·김계원등 박대통령시해사건·관련피고인 8명에 대한 내란목적살인·내란미수·증거은닉사건 첫공판이 4일 상오10시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재판부(재판장 김영선 육군중장) 심리로 육본보통

    중앙일보

    1979.12.04 00:00

  • 10월27일…숨가빴던 새벽

    ○…한국사태발생의 제1보가 백악관에 전해진것은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7일 (토요일) 상오2시40분 (이하한국시간) 이었다. 「글라이스틴」주한미대사가 백악관의「브레진스키」안보담당보

    중앙일보

    1979.11.07 00:00

  • 개인별 범죄 사실

    김재규 ◇인적사항 ▲본적=경북 선산군 선산읍 이문동78 ▲주소=서울 성북구 보문동 7가184의10전 중앙정보부장·54세 ◇학경력 ▲43년12월 안동농림중학교 졸업 ▲46년l2월 육

    중앙일보

    1979.11.06 00:00

  • 박대통령 시해사건 전모

    원흉 김재규는 이미 발표한 바와같이 업무수행과정에서 무능이 드러나 대통령각하로부터 수차에 걸쳐 힐책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박대통령각하께 드리는 보고·건의가 차경호실장에 의해 제동

    중앙일보

    1979.11.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