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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법정진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피고인에 대한 11문답은 별항과 같다.
▲피고인의 직책은?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재직기간은?
-76년12월4일부터 79년10월26일까지다.
▲피곤인은 박대통령과 차실장을 살해한 사실이는가.
(박대통령각하…사명감 운운하다 재판부의 제지를당함)
▲질문에 대답만해달라. 사살장소와 시간은 언제였나?
-l0월26일 하오7시45분 궁정동 중앙정보부 식당이었다.
▲만찬연락은 언제 누구로부터 받았나.
-하오4시쯤 차실장으로무터 받았다.
▲정승화총장과 김정섭 제2차장보에게 연락했는가.
-하오4시15분부터 4시30분 사이에 했다.
▲그내용은?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했다.
▲김정섭차장보에게 뭐라고 했나.
-하오5시30분까지 오라고 했다.
▲그전에도 정승화총장과의 만찬이 대통령과의 만찬과 겹치게해서 부른일이있는가.
-그런일 없었다.
▲범행후 총장을 이용하려 한것이냐.
-그렇다.
▲기억을 더듬어 확실한 대답을 해달라.
-그렇게 하겠다.
그날은 시해를 결심하고 정총장과의 접촉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부른 것이다.
▲피고인은 궁정동에 언제 갔나. (김피고인은 차실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정보부장사무실에 있었다)
-4시30분 도착했다.
▲도착후 무엇을 했나.
-2층사무실 금고에서 총을꺼내 실탄을 장전하고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켜 보면서 고장유무를 확인했다. 그리고 후의 계획을 구상했다.
▲독일재 7연발 「웰터」권총을 꺼내 실탄 7발을 장전하고 고장유무를 확인했는가.
-그렇다.
▲권총을 서가뒤에 숨겨뒀는가.
-그렇다.
▲김계원비서실장은 언제 도착했는가.
-하오5시10분전쯤이다.
▲궁정동사무실에서 이야기하다가 하오5시50분쯤 식당으로 같이 갔는가.
-5시40∼50분 사이로 기억한다.
▲김실장이 사무실에서 뭐라고 했는가. 그리고 또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앞으로 신민당이 정운갑대행체제가 출범하면 사태가 제대로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식당으로갔는가.
-그렇다.
▲식당에 들어가기전 정원의 경계석에 앉아 무슨 말을 했는가.
-차실장이 야당친구 한두사람 말만 듣고 각하에게 보고하기 때문에 야단이라는 말을 나눴다.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했는가.
-오늘 그친구(차실장을 지칭하는 듯)를 해치우겠다고 말했다.
▲그때 김계원 피고인의 반응은?
-나의 말투는 약간 강경했으나 김계원실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 긍정적인 표정이었다.
▲『형님, 뒷일을 부탁합니다』고 말했다는데.
-그런 일 없다.
▲김계원 피고인이 그때 응했다면?
-그 자리에서 『농담이었읍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검찰진술(조사과정)에서는 시해현장에서 『김계원실장도 사살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반대의사가 뚜렷했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김계원피고인과 차실장과의 관계는.
-차실장은 강경론자고 김실장은 온건론자다. 생각하는 기본이 다르다.
▲예를 들어 두사람 사이의 나쁜 증거를 대라.
-김실장이 부임초 『차실장이 월권이 많아 불쾌하다. 그친구 멋대로 논다』고 말했다. 나는 이때 『육군대장(김계원) 과 대위(차지철)출신이 싸웠다면 누구든지 대장을 욕할 것입니다. 형님이 참으시오』라고 말했다.
▲월권행위란 구체적으로.
-나한데 말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대통령은 몇시에 도착했는가.
-하오5시다.
▲6시가 아닌가.
-6시5분이다. 정정하겠다.
▲누구하고 왔는가.
-차실장하고 왔다.
▲만찬석장의 좌석배열은?
-상좌에 각하가 앉았고 그 맞은편 오른쪽에 김실장, 왼쪽에 내가 앉았다. 내가봐서 왼쪽자리에는 차실장이 앉았다.
▲김계원피고인과 피고인간의 간격은?
-20㎝쯤이었다. 몸만 돌리면 닿을 수 있는 사이였다.
▲만찬에서의 담소내용은?
-『삽교천이 보기 좋더라』고 각하가 말씀하면서 『왜TV에 안나오느냐』고 했다. 누군가가 『할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피고인은 뭐라고했는가.
-말은 안했지만 『저친구 아직도 저런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딱하게 생각했다.(재판부다시 주의환기)
▲권총은 언제 현장에 가져 갔으며 만찬중 몇번 자리를 떴는가.
-세번 떴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가기위해서 였고 두번째는 정총장과 김차장보가 왔는가를확인하기위해 그자리에 갔고, 세번째는 박선호과장의 준비태세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시계주머니에 권총을 넣고 들어갔는가.
-나는 담배를 안 피우므로 「라이터」주머니를 보통보다 크게 만들어 거기에 권총을 넣도록 해두었다.
▲박선호·박흥주를 어떻게 가담시켰는가.
-총장과 제2차장보가 와있는 것을 확인하고 권총을 갖고나와 구관건물 중앙에서 이들을 만나 가담시켰다. 『오늘 내가 실행하니 나를 따라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오늘저녁에 해치운다는 말을 했을때 어떻게 그들이 따라 했는가. 그전에 협의했는가.
-그전에는 기밀관계로 말한 일 없다.
▲처치대상을 구체적으로 안 밝혔는데도 따르던가.
-그렇다.
▲두사람의 표정은?
-『각오는 돼있읍니다』라고 했다.
▲『각하까지 포함되느냐』고 누가 물었으며 뭐라고 대답했는가.
-박선호가 물었으며 그렇다고 했다.
▲박선호가 『경호원이 7명이나 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했다는데.
-『안된다. 나는 준비가 다 됐다』고 했다.
▲박선호· 박흥주피고인이 블응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는가.
-안했다. 그들은 평소 내말을 잘 듣는 심복이다.
▲그들과의 관계는?
-박선호와는 사제지간이고 박흥주는 내가 소장때부터 전속부관으로 지금까지 같이 일해왔다.
▲두 박피고인에게 뭐라고 했는가.
-불응할것 같아서 총장과 차장도 와있다고 했다.
▲두 피고인이 뭐라고 했는가.
-시간을 30분만 달라고 했다.
▲남효주(정보부직원)가 만찬도중 불러내서 어떻게 했는가.
-남의 사무실로 가서 박선호로부터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들어가서 곧 발사했는가.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했다. 이때 김실장을 팔꿈치로 치면서 『각하를 똑똑히 모십시오』라고 말하고 귄총을 꺼내면서 차실장에게 『이 버러지 같은 놈아』라고 소리치며 1발을 쏘았다. 그러고 1초의 백분의1도 아닌 사이에 각하를 쏘았다.
▲차실장은 치명상이었는가.
-아니다.
▲왜 계속 안쏘았는가.
-실탄이 안 빠져 노리쇠를 후퇴시키면서 밖으로 나왔다. 박선호를 밖에서 만나 총을 뺏어 다시 들어가 2차공격을 했다.
▲두번째는 치명장이었는가.
-그렇다고 느꼈다.
▲처음에 차실장이 손에 맞은 것을 알았는가.
-몰랐다. 그의 표정도 기억나지 않는다.
▲두번째 들어갔을때 차실장은 어디있었는가.
-문갑 뒤에 숨어있었다. 문갑은 방탄이 되지 않기때문에 그냥 쏘았다.
▲차실장이 쓰러지자 각하를 다시 쏘았는가.
-각하의 두부를 향해 쏘았다.
▲두번깨 확인사살을 하고난뒤 김계원피고인의 표정은 어땠는가.
-표정을 살필 시간 여유가 없었다.
▲마루에서 김계원실장을 만나 무슨 말을 했는가.
-일은 끝났으니 보안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했다.
▲김실장이 『알았소, 하옇든…』이라고 했다는데….
-그렇다.
▲김실장이 『사태를 무엇이라고 말하지』라고 했다는데.
-『각하가 과로로 졸도했다고 하든지, 알아서 하시오』라고 했다.
▲김계원피고인에게 『나는 한다고 하면 합니다』 라고 했는가.
-나는 그런 용어를 잘쓰지 않는다.
▲김계원피고인이 범행을 적극 도왔는가.
-그렇지는 않다.
▲시해직후 맨발에「셔츠차림으로 집무실로 뛰어갔는가.
-마침 신발이 안보여서 그냥갔다. 뛰어간 것은 아니고 빠른 걸음이었다.
▲식당으로 가서『물, 물』했다는데.
-물을 마신 일은 있다.
▲그런뒤 어떻게 했는가.
-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차관보와 함께 차를 탔다.
▲총장과 차관보가 식사하고 있는곳으로 가서 처음 무슨 얘기를 했는가.
-『큰일이 났으니 차에 타시오』라고 했다.
▲차에는 누가 탔는가.
-육군참모총장, 김정섭중앙정보부차장보, 박흥주대령과 내가 탔다.
▲차를 타고 정보부로 가자고 했는가.
-『가자』고만 했다. 내차였기 때문에 그말에 운전사가 정보부로 가자는 줄 알고 남산중앙정보부로 향했을 것이다.
▲시청앞·신세계·남산을 거쳐 육군본부까지 오는 차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가.
-정총장이 『어떻게 된일이냐』고 물어 엄지손가락을 폈다가 밑으로 떨어뜨리는 시늉을 했다.
▲정총장의 『각하가 돌아가셨느냐. 외부의 일이냐, 내부의 일이냐』라는 물음에 답변을 하지 앉았다는데.
-그렇다. (이때 김피고인은 기억이 잘 나지않는다면서 처음 수사과정에서의 진술기록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검찰관이 심문기록을 읽어나가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차가 세종「호텔」앞에 갔을때 정총장이『육본으로 가자』 고 했다는데.
-그렇다.
▲그때 피고인은 박흥주피고인에게 『어떻게 하지』라고 묻고 박피고인이 『육본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남산에서 육군본부로왔다는데.
-그렇다.
▲그정도의 계획밖에 없었는가.
-나는 계엄선포를 유도해서 육군참무총장이 3권을 장악토록하고 계엄사령부를 혁명위원회로 바꾸려했다.
▲정총장이 말을 안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가.
-불응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블응했다면?
-말할 수 없다.
(이때 검찰관이 말을 막았다)
▲협박하려한 것은 사실인가.
-그렇다.
▲육군본부 「벙커」에 도착한 시간은?
-하오 8시쯤이었다.
▲「벙커」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김피고인은 기억을 더듬는듯 머뭇거리고 있었다)
▲「벙커」에서 김계원피고인과 전화를 통해 『접니다. 이리 오시오』라고 했는가.
-김실장이 총리와 같이 있으니 그쪽으로 오라고해서 육본으로 오라고 했다.
▲큰영애가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물어서 김계원피고인이 『다른데 계신다』고 얼버무렸다고하며 또 물으면 뭐라고 하지라고 말하자 피고인(김재규)이『잘했소』라고 했다는데.
-김실장이 보안유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김계원피고인과 두 번째 통화에서 무슨얘기를 했는가.
-『나는 그쪽으로 못가니 총리모시고 이리로 오시오』라고 했다.
▲명령조였다는데.
-억양은 강했겠지만 존칭도 빠뜨리지 않았고 실례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김계원피고인이 멈칫하면서 『알겠소, 가겠소』라고 했다는데.
-『오겠다』고 했다.
▲그때 김계원피고인은 어떤 느낌을 가졌다고 생각했는가.
-어떤 느낌을 말하는가.
김재규피고인이 정총장을 인질로 잡고있는 줄 알고 김계원피고인이「벙커」로 갔다는데. ·
-나는 그런말 들은일 없다.
▲장관들이 비상계엄·국방문제를 토의하자고 제의하자 피고인은『지금은 보안을 지켜야지 국방문제를 검토할 수 없다』고 했다는데.
-그렇다.
▲장관들이 국방부회의실로 옮길때 김계원피고인과 단둘이 뒤처져 얘기를 했다는데.
-김실장에게 다시 보안을 강조하고 계엄사간판을 최단시일안에 혁명위원회로 바꿔야한다고 했다.
▲국방부장관실에서는 무슨 얘기를 했는가.
-진술서를 낭독해 달라.(검찰관이 진술서를 낭독해주자 김피고인은 『맞다』고 했다.)
(진술조서내용은 김재규피고인이 국무위원들 앞에서 비상계엄선포를 거듭 독촉했다는 것이다.)
▲국방장관실에서 김계원피고인과 마주앉아 김계원피고인의 눈을 주시하면서 지켜봤다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그동안의 사건경위를 수사발표대로 낭독하다가)김정섭차장보에게 국내보도를 철저히 막고 외신이 전파를 홀리는지 잘 관리하라고 했다는데.
-그렇다.
▲체포된 경위는.
-김계원이 안보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찾는다기에 나갔더니 대기헌병이 체포했다.
▲국무위원들이 비장계엄선포에 동의했는가.
-국무위원들도 안보를 강조하자 동의한 것 같았다. 다만 총리가 사유를 추궁했을 뿐 다른 장관들은 특별한 이의가 없었다.
▲차실장에 대해 평소 『경호만하면 되지』라고 했다는데.
-그런일 없다.
▲독백으로라도 그런말 한일이 없는가.
-내가 미친사람이 아닌데 무슨 그런 독백을 하겠는가.
▲경고친서를 받은 일이있는가.
-경고친서를 받은 일은 없고 동생의 비위에 관한 서신을 대통령이 주면서 참고하라고 한일은 있다.
경고친서는 아니었지만 감찰실장에게 조사를 의뢰해 대통령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그때 『아우가 형님이 공직에 있는 동안은 사업을 안하겠다고 말하더라』고 대통령에게 말했더니 대통령이 『아무것도 아닌데 무얼 그러느냐. 당신은 공무원이지만 동생은 사업가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조사를 정보부장지휘를 받는 감찰실장에게 맡긴 이유는.
-경고친서가 아니라 참고서신이기 때문에 감찰실장에게 확인시킨 것이다.
▲사전에 다른 사람에게 범행구상을 얘기한 일이 있는가.
-없다.
▲시해후의 구상은.
-기성조직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3∼5개월 동안에 각시·도지사와 장관급·각군총장·군단장·군관구사령관으로 혁명의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를 조직, 그 밑에 재판소와. 검찰부를 두고 주도는 내가 하러고 했다.
▲국민이 따라 오리라고 믿었는가.
-10·26거사는 내가 주도했기 때문에 나는 국민에게 호소력이 있다.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 일이되지 않는다.
▲대통령시해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는가.
-은폐가 계속될 수는 없다. 72시간까지만 보안을 유지하려고 했다. 각하는 자유민주주의회복과 자신의 희생을 숙명적으로 대치시켜놓고 있었다.
▲범인임을 은폐하고 계엄을 선포할 계획이었는가.
-자체내(중앙정보부를 뜻하는 듯)에서 72시간동안 은폐하려고 했다.
▲중앙정보부 안전국요원이 수사하고 보안을 지켜 조사중이라고 말하면서 사태에 따라 발표하려 했다는데.
-그령다.
▲YH사건때 대통령비서실장실에서 김계원피고인, 유혁인·고건·김정섭등과 회의를 갖고 온건론을 펴는 다른 사람을 제치고 안전대책이 안돼있다는 치안본부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김재규피고인이 치안본부장에게 여공들을 해산시키라고 했다는데.
-그건 이번일과 관계없는 것 아니냐.
(검찰관이 긴급조치에 대해서 물으려하자 법무사가 공소사실과는 무관하다고 제지했다.)
▲범행결행 시기가 왔다갔다해서 혼동된다. 처음에 궁정동 공관 2층 학장실에서 10월26일 하오7시5분 결심했다가 다음에는 차실장의 연락을 받고난 뒤 그날하오 4시10분이라고 했다.
▲피고인이 정보부장 재직기간 중 긴급조치 위반자로6백39명을 구속했다는데.
-왜 입건·구속않느냐는 말때문에 그랬다 (하오3시46분)

<변호인단과 일문일답>
다음은 변호인과 김피고인간의 1문1답.
▲본적지는.
-경북선산군선산읍이문동78이다.
▲거기가 출생지인가.
13대째 거기서 살아왔다.
▲부친성함은.
-김현철이며 나는 장남이다.·
▲선산국민학교와 안동농림학교에 다닐때의 성적은.
-상위에 속했다.
▲일본군 간부후보생을 언제 지원했는가.
-1943년에 지원했다. 임관전 해방이 되어 후보생으로 그쳤다. 주 특기는 항공병과 였다.
▲육사에는 언제 입교했는가.
-해방 후 1년동안 선산국민학교 교사로 있다가 후년9월 입교했다.
▲2기생으로 박대동령과 동기인데 사관학교 재학중 친분이 있었는가.
-박대통령과는 같은 고향이지만 그는 구미출신이고 나는 선산출신이어서 특별히 흉금을 터놓고 지낼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사단장·관구사령관· 보안사령관을 지냈는데 박대통령과의 친분때문인가.
-순서에 따른 승진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고향이라는 친분드 약간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관계는.
-4넌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현재 노모와 남동생 둘, 여동생 5명이있다.
▲군을 지망한 이유도 거기에 있는가.
-입대동기는 군이 생리적으로 내게 맞기 때문이고 남자다운 포부와 기질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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