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81)피 어린 산과 언덕(6)

    「김일성」·「모택동」 두 고지에 대한 한국 해병대의 공격은 51년7월10일 개성휴전 회담이 시작된 이래 정돈상태에 빠져있던 전선에서 적의 주방어선을 처음으로 치고 들어 간 전투였다

    중앙일보

    1972.10.11 00:00

  • (380)피 어린 산과 언덕(4)|김일성 고지전투(1)|고지쟁탈전

    두솔산 전투에서 개가를 올린 후 후방의 홍천으로 나와 한달 동안 휴식과 부대를 재정비한 한국 해병대는 51년 8월말부터 다시 전선에 투입되어 이번에는 「펀치볼」북방의 김일성 고지와

    중앙일보

    1972.10.09 00:00

  • (379) 피어린 산과 언덕 (3)|두솔산 전투 (2)|고지 쟁탈전

    1951년 6월 당시 전황으론 아군이 「펀치볼」을 둘러싼 능선 좌측의 두솔산을 점령해야만 전방의 「김일성 고지」·「모택동 고지」·「가칠봉 고지」등을 뺏을 수 있고 또한 「피의 능선

    중앙일보

    1972.10.07 00:00

  • (378)-(2)「6·25」22주기…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1)고지쟁탈전 적의 춘계 공세가「유엔」군에 의해 분쇄되고 주「유엔」소련 대표「야콥·A·말리코」가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할 무렵인 51년6월 중동부 전선의 두솔산 일대서는 우리 해병

    중앙일보

    1972.10.05 00:00

  • (374)스탈린의 죽음(8)|베리야의 최후(2)

    「베리야」의 실각은 필연적으로 중공정권 안의 권력투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요즘 죽의 장막 안의 최대의 수수께끼가 되고있는 임 표의 부심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탈린」

    중앙일보

    1972.09.23 00:00

  • (373)-(7)

    (1) 「스탈린」 측근자들은 그의 사후 비밀경찰두목인「라브렌티·베리야」거동에 비상한 관심을 쏟으며 벌벌 떨었다. 1938년의「스탈린」의 『피의 대숙청』을 직접 지휘한「베리야」의 경

    중앙일보

    1972.09.20 00:00

  • (371)|「스탈린」의 죽음 (5)|소련과 6·25( 2)

    1949년 3월 초순에 「크렘린」 당국자들은 북한과 중공 집권자들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였다. 이때 중공은 만주를 거의 휩쓸며 대륙 지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며, 남한에는 대한민국

    중앙일보

    1972.09.13 00:00

  • (351)유격전(20)|민간유격대

    6.25전쟁 중 적지가 된 여러 지방에서는 애향심과 적개심에 불타는 지방유지들과 청년들이 공산군이나 그 기관을 기습하는 등 산발적인「게릴라」전을 벌였다. 이들은「유엔」군과 경찰이

    중앙일보

    1972.07.17 00:00

  • 임표는 모택동 암살을 기도했었다

    수수께끼 속에 잠겼던 중공국방상 임 표의 실각은 그의 모택동 암살기도가 실패, 공군기로 소련으로 탈출하려다 사망한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진 중공의 비밀문서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중앙일보

    1972.07.15 00:00

  • (350)유격전(19)「타이거」여단

    1·4후퇴 때 곧「유엔」군이 다시 진격해 오리라고 믿고 향토에서 그대로 버티던 황해도연백지방의 학도의용대·청년방위군·치안대·특공대·소년 대 등은 51년 2월부터 공산군 주력부대가

    중앙일보

    1972.07.14 00:00

  • (346) 유격전⑮ - 백마부대(1)

    평안북도 정주군 일대의 반공 청년들을 중심으로 편성됐던 유격 백마부대는 북위 40도선에 가까운 대화도·애도·단도·암도등을 거점으로하여 철산반도 연안의 섬들을 방어하며 「게릴라」전을

    중앙일보

    1972.07.06 00:00

  • (340)-(9)

    (9) 해상 대는 1952년 6월부터 10월까지 사이에 가장 치열한 작전을 전개했다. Y부대는 내륙 깊숙히 침투한 육상대가 51년 겨울 분산월동중 대부분 와해돼버리자 작전의 역점을

    중앙일보

    1972.06.21 00:00

  • (336)유격전(5)|Y부대(5)

    동해안 전역에 침투한 Y부대 유격용사들은 10월에도 월동준비를 하면서 계속 치열한 작전을 벌였다. 각 부대의 전과는 전문을 통해 영도본부에서 확인한 것들인데 무전불통이나 작전중 부

    중앙일보

    1972.06.12 00:00

  • (335)>유격전(4)|Y부대(4)

    산이 생긴 이래 인적이라곤 거의 없었던 밀림 속에「아지트」를 구축한 Y부대 유격용사들은 수백 리 씩 나가 수색 전을 전개해 전투를 위한 정보를 수집했다. 오직 적개심을 안고 반공유

    중앙일보

    1972.06.09 00:00

  • 안록 시, 거의 실함|월맹군, 중심부에 돌입

    【사이공12일UPI 동양】「탱크」와 월남전 사상 가장 치열한 1만발의 「로키트」포, 박격포 및 야포 포격지원을 받고 휴대용 대공 「미사일」로 미군 「제트」기들을 견제하면서 「사이공

    중앙일보

    1972.05.13 00:00

  • (325)|6·25 21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아이크 집권과 내한(1)|등장의 배경(1)

    1943년9월5일, 구주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아이젠하워 원수는 UPI통신(주=UPI의 전신)의 바질·핑크리 기자로부터 놀날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종군 특파원인 핑크리 기자는 지중

    중앙일보

    1972.05.12 00:00

  • 「하이퐁」항 해·공군 공격

    【사이공 11일 로이터동화】미「제트」전폭기들과 「베트남」해역의 제7함대 포함들은 10일 월맹군의 대남 공세 지원을 비롯한 월맹영내의 모든 군수물자유입을 가능한 최대로 차단하라는 「

    중앙일보

    1972.05.11 00:00

  • (324)|하늘의 전쟁(15)|제한된 임무 수행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패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미 극동공군은 한국전쟁에서도 『제한된 사명』을 훌륭히 완수하였다. 1944년 6월 15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창설된 미 극동

    중앙일보

    1972.05.10 00:00

  • (323)|하늘의 전쟁(14)|미그 통로의 공중전

    미 공군이 한국전쟁에서 공산군을 격파하는데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미 공군은 북괴 남침 후 해군과 함께 6월27일부터 한국전에 개입, 4∼5일 안에 2백여 대의

    중앙일보

    1972.05.08 00:00

  • (318)-하늘의 전쟁(9)

    (1) 1951년10월11일부터 53년7월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한국 공군의 출격 작전은 거의 강릉 기지에서 감행되었다. 10월l일에 사천에 본부를 둔 제1전투 비행단의

    중앙일보

    1972.04.24 00:00

  • (316)하늘의 전쟁(7)

    (1) 조종사와 정비사는 바늘에 실이 따르듯 부부와 같은 일련돈생의 관계. 전자가 양지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는 것은 그 뒤 응달에서 묵묵히 정비에 피땀을 흘리는 후자의 각고가 있기

    중앙일보

    1972.04.19 00:00

  • 북 폭 기에 위협증대

    월맹은 요즈음 북 폭에 나선 B-52 중폭격기를 격추시켰다해서 한창 의기양양하다. 실제 그들이 격추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B-52기가 아니라 실은 EB-66기였는데, 그래도「사이공

    중앙일보

    1972.04.17 00:00

  • (315)하늘의 전쟁(6)|F-51전투기 인수|「6·25」21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6월26일 하오4시쯤 한국공군은 7년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과도 같은 희소식에 접했다. 미 극동공군사령부에서 F-51「머스탱」전투기를 주겠다는 통보가 온 것이다. 6·25전에도 한

    중앙일보

    1972.04.17 00:00

  • (313)건국호의 출격(2)|하늘의 전쟁(4)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적 남침 이틀만인 6월26일 저녁에야 한국공군이 목마르게 기다리던 F-51「머스탱」전투기의 제공을 승인했다. 이래서 AT-6기 건국 호를 타고 출격하던 10명의

    중앙일보

    1972.04.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