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힘들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8호 30면

“부장님,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료가 걱정하는 얼굴로 인사한다. “저 괜찮은데요.” 너무 큰소리로 대답했는지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다. 요즘 통 잠을 못 자는데 그것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고 있다. 통증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마치 갓난아기 같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우는 갓난아기. 밤낮이 바뀌어 밤새 잠 안 자고 자꾸만 칭얼대는 아기. 안고 업고 으르고 달래 겨우 잠재웠는데 작은 뒤척임에 와락 깨어 악을 쓰며 우는 아기. 통증은 아내의 모든 것을, 몸과 마음과 영혼을 독점한다. 질투심이 많은 통증은 집요하게 아내의 일상을, 아내의 이상을 망가뜨린다. 아내는 일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세미나에 참여할 수도 없다. 앓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내가 끙끙거리는 동안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존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남편은 고단하다. 남편으로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늦게 퇴근해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먹고 씻고 책이라도 읽으려고 소파에 앉았다. 나는 몇 쪽 못 읽고 병든 닭처럼 존다. 닭은 안방에서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깬다. 아내는 아픈 다리를 내놓고 남편이 주물러 주기를 바란다. 주무르고 문지르는 것이 통증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남편은 회의하지만 아내는 확신한다. 사람의 몸은 알라딘의 램프와 같아서 남편이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고 문지르면 마법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 통증을 가라앉힌다는 것이다.

“힘을 줘서 좀 꾹꾹 눌러 봐요. 주무르는 시늉만 내지 말고.” 졸다가 온 남편에게 무슨 정성과 의욕이 있겠는가. 내가 항의하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나 사랑하지 않아?” 나는 손가락과 손바닥에 힘을 준다. “거기 말고 좀 더 아래, 아니 장딴지 뒤쪽을 좀 오랫동안 눌러야지.” 남편은 아내의 고통보다 자신의 잠이 더 절박하다. 아내를 주무르다 나는 어느새 존다. 졸다가 쿡 쓰러져 잠든다.

새벽 세 시. 아내가 남편을 깨운다. “등 좀 두드려 줘요.” 아픈 아내는 잘 체한다. 아내는 소화제보다 남편의 손을 더 좋아한다. 자다가 일어난 남편의 손엔 힘이 없다. 힘 없이 두드리는 남편의 손길이 아내의 성에 찰 리 만무하다. “힘껏 두드려 봐요. 당신 날 사랑 안 해?” 사랑하지만 손에 힘이 하나도 없다. “사랑해.” “말로만? 진심으로 사랑하면 이럴 수는 없어.” 아내는 자꾸 힘을 주라고 하는데 없는 힘이 갑자기 어디서 생겨난단 말인가. 아픈 아내와 고단한 남편은 서로를 향해 짜증을 부리고 원망한다.

물론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24년 전 결혼식장에서 주례 선생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변함없이 아내를 존중하고 아끼며 사랑할 것을 서약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라고 대답했다. 너무 큰 소리로 대답해 하객들을 웃기기까지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서약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내를 사랑하기에는 나는 너무 잠이 많고 힘이 없는 남편이란 것을.

퇴근하고 집에 가니 식탁 위에 못 보던 비타민제가 놓여 있다. “무슨 약이야?” “당신 먹으라고. 이거 먹고 힘내야 더 잘 주무를 거 아냐. 파이팅!” 아내가 주먹을 불끈 쥔다. 사랑은 힘들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