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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 … 죄인이로소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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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28면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60)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 만난 장 그르니에가 평생의 스승이었다. 신문기자로서 필명을 날렸고, 한때 공산당원으로 열렬히 활동했으나 무엇보다도『이방인』과 『페스트』를 지은 부조리 작가로 알려져 있다. 마흔네 살에 노벨 문학상 최연소 수상자가 됐으나 3년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생을 마감했다.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니지만 실제로 일어났을 때 별일인 경우도 있다. 대서양에서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강력한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 법. 이런 나비효과가 한때 잘나가던 멋쟁이 변호사 클라망스에게 일어났다. 파리에서 살던 클라망스가 태풍에 휘말리듯 암스테르담에 있는 ‘멕시코시티’라는 바에 던져져 버린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스스로 ‘속죄 판사’를 자처하며 바에 들른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냉정하게 심판하는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타인의 죄를 심판하기에 앞서 그는 자신이 지은 죄를, 그러니까 별일도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별일이었던 사건으로 생긴 자신의 죄를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는다. 영원한 이방인이자 반항인이었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전락(La Chute)』(1956)에서 클라망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클라망스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육성을 잠시 들어보자.

강신주의 감정 수업 <24> 회한

“그날 밤, 나는 퐁루아얄을 건너 센강 왼편에 있는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지요. 자정이 지나 1시였는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다리 위에서, 나는 난간 위로 몸을 숙이고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한 형체 뒤를 지나갔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검은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젊은 여자였습니다. ..다리 끝에서 당시 살고 있던 생미셸 방향 강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약 50m쯤 갔을 때,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이 강물로 뛰어드는 소리였지요. 꽤 먼 거리였지만 밤의 정적 탓에 이 소리가 내 귀엔 엄청나게 크게 들렸습니다. 우뚝 걸음을 멈췄지요.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곧바로 외마디 비명이 들렸고 몇 번 더 이어졌지요.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뚱이가 꼼짝하질 않는 겁니다. 추위와 충격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던 것 같아요. 속으로는 빨리 가봐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습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너무 늦었어, 너무 늦은 거야…’거나 아니면 그 비슷한 말이었을 겁니다.”

아마 누군가 클라망스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자살한 여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리의 생활을 접고 마치 죄인처럼 살아간다는 것에 선뜻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살한 그녀는 그로선 생면부지의 남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별일도 아닌 일로 자책할 것까지는 없다고 그를 위로할 수도 있다. 아마 클라망스도 우리 조언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개를 끄덕인다고 해도 자살하려는 여자를 구하지 못한 책임은 이미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죄로서 각인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별일도 아닌 일이 별일이 되어 한 사람에게 속죄의 삶을 강제할 수도 있는 법이다. 회한이라고 해도 좋고 양심의 가책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감정을 품는 순간이 오면 클라망스가 아니라 누구라도 다시는 봄날을 찾기 힘든 잿빛 가을의 저주에 갇히게 될 것이다.

“회한(conscientioe)이란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Ethica)』)
문제는 클라망스가 물에 떨어진 여자를 구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소망을 품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아예 차가운 센강에 떨어진 여자를 구하려는 생각, 아니 희망이라도 없었다면, 그에게 이런 회한이 깃들 리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바로 여기에 당시 클라망스가 느꼈던 무력감, 다시 말해 구하려는 생각은 품었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었던 무력감의 실마리가 있다. 자신의 무력감이 드러났던 슬픔만큼 비참한 경험도 또 있을까?

스피노자에 따르면 기쁨이 자신의 힘이 증진되었다는 느낌에서 오는 것이라면, 슬픔은 이와는 반대로 처절한 무력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니 회한이란 감정은 얼마나 무서운가. 위기 상황에 이르면 타인을 구원하기는커녕 항상 무력감을 느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사람이 어떻게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소망스러운 감정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센강에서 느낀 무력감에 대한 회한이 얼마나 클라망스의 내면을 지배했는지, 그는 배가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마저 누군가가 물에 뛰어든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는 상갑판 위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저 멀리 검푸른 바다 위에 검은 점 하나가 보이더군요. 얼른 눈길을 돌려버렸으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돌려 다시 보았을 땐 검은 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하마터면 바보같이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할 뻔했던 거지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점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알고 보니 배들이 지나가면서 버린 쓰레기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차마 이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즉시 익사자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지요.”

회한이란 감정을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품고 있던 클라망스의 삶은 얼마나 힘든 생일까?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그가 ‘속죄 판사’를 자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과 같은 회한의 감정을 주입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클라망스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에게도 자기처럼 죄가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만 했다. 모든 사람이 회한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자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절망적인 소망! 이것이 그를 암스테르담의 남루한 바에 머물도록 만든 동기 아니었을까.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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