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내년 하반기 이후나 수출회복"

중앙일보

입력

생산품의 80% 이상을 수출하는 한 전자부품업체는 8월말 현재 4분기 주문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밖에 안돼 초비상이다.

수출 주문을 받기 위한 상담은 더 줄어 지난해의 10∼20%밖에 안된다고 한다.회사 관계자는 “세계경기 침체의 여파가 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업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수출경기가 심각하다.

중앙일보는 국내 수출의 70% 가량을 담당하는 1백대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4분기 수출전망’을 긴급 설문 조사했다.

이 결과 4분기에 수출할 물량의 주문·상담건수와 금액이 크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출경기 회복은 내년 하반기 또는 그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이번 조사는 8월 31일∼9월 4일 e-메일로 진행했으며 62개 기업의 수출 임원·실무자가 응답했다.

◇4분기 수출도 준다=조사 결과 응답기업 둘 중의 하나는 “올 4분기 수출을 위해 주문받은 물량과 상담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줄었다”고 밝혔다.‘4분기 수출주문 물량이 지난해의 절반도 채 안된다’고 밝힌 업체도 있었다.

세군데였는데 이들은 모두 대표적인 수출기업으로 꼽히는 대기업이다.또 상담 전단계인 거래제안서(인콰이어리)를 포함해 상담을 진행중인 건수가 지난해의 절반이하라고 대답한 기업도 네 개사였다.

수출실무자들은 올 12월까지 수출할 물량은 지금쯤 주문을 받았거나 최소한 상담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시점의 주문·상담실적은 4분기 수출실적을 예견할 수 있는 지표라는 점에서 수출기업 관계자들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수출에 따른 이익도 많이 줄 것으로 보인다.응답기업 다섯 개중 세 개 기업은 지난해 수출해 1백원의 이익이 났다면 4분기 주문받은 물량의 경우 같은 양을 수출해 70∼90원 정도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답했다.

수출경기가 꺾이기 시작했던 올 1∼3분기에 비해서도 4분기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4분기 수출시장 경기가 1∼3분기에 비해 비슷하거나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 기업이 절반을 넘었다.

해외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도 악화될 것이란 전망(28%)이 개선(17%)될 것이란 전망보다 많았다.

◇수출회복은 내년하반기 이후에나=일선 수출기업 관계자들은 “올해안에 수출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버린지 오래”라고 말한다.

한 섬유업체 관계자는 “미국 주요 거래선들의 주문이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아예 연락을 끊은 바이어도 있다”며 “올초부터 일본·동남아 등 시장다변화 노력을 기울여 하반기엔 신시장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존 주력시장이 너무 나빠져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8월까지 전년대비 85%수준의 수출실적을 올렸고,4분기에도 80∼85%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종합상사들도 수출전망치를 계속 낮춰잡고 있다.

지난해 2백56억달러를 수출한 삼성물산은 올해 당초 2백80억달러를 목표했었으나 지금은 내부적으론 2백억달러 정도를 전망하고 있다.

LG상사도 올초 지난해(1백28억달러)보다 늘어난 1백40억달러를 목표로 했으나 지난 6월말 지난해수준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LG상사 관계자는 “최선은 다하겠지만 목표 달성을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기업관계자들은 ▶세계경기의 침체 ▶IT경기회복 지체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 ▶중국의 부상에 따른 경쟁격화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 전자부품업체 관계자는 “경기침체에도 세계에서 1등으로 인정받는 제품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결국 어중간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불황기에 더 큰 타격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무역협회가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수출부진의 원인이 해외경기침체(41.4%)와 함께 ▶가격경쟁력하락(32.2%)^품질경쟁력 하락(21.3%)등으로 나타났다.

업계 스스로도 수출부진의 원인이 상품경쟁력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무역협회 이인호 조사팀장은 “중국·인도 등 후발국가가 약진하자 우리 제품이 바로 영향을 받는 것도 결국은 경쟁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4분기에 지난해보다 더 많은 수출 주문을 확보했다고 밝힌 기업들은 대부분 확실한 상품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있거나 기술벤처기업들이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센터장은 “최근 벤처기업들 중 수출실적이 좋아지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들이 국내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 수출을 늘리는 관건은 결국 전통산업의 경쟁력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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