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극우 공약’ 일본 내서도 거센 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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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의 극우 성향 총선 공약에 대해 일본 안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21일 도쿄에서 자신의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색깔이 선명한 자민당의 우익 공약이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22일 일본 언론들은 전날 아베 총재가 발표한 헌법·영토·과거사 관련 공약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아사히(朝日)신문은 ‘3년간 무엇을 한 것인가’란 사설에서 “이번 공약엔 야당으로 전락한 뒤 3년간의 학습 결과가 담겨 있어야 하는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총체적으로 비판했다.

 역사 기술에 있어 주변국을 배려하는 ‘근린제국조항’의 수정,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론·반증을 강화하겠다는 공약과 관련해 아사히는 “주변국과의 신뢰 구축에 큰 역할을 해온 근린제국조항이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한다면 주변국과의 관계가 한층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 역시 준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도쿄(東京)신문은 ‘과연 개헌이 긴박한 과제인가’란 사설에서 아베의 개헌 드라이브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주장에 초점을 맞추며 “일본이 전후 걸어온 평화국가로서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국익 역시 크게 손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계 각국으로부터 지원이 쇄도한 건 정부개발원조 등을 통해 일본이 국제적 신뢰를 쌓아온 결과”라며 “개헌론은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총선 뒤 자민당의 유력한 연립 파트너로 거론되는 공명당도 “우리는 현행 헌법을 존중한다”며 자민당의 국방군 보유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주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마이니치 신문은 아베의 강경 외교노선이 그가 추구하는 미·일 동맹과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주변국과의 대립과 갈등을 완화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미국과 일본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며 “센카쿠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건 양국의 전략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아베가 공약 발표 이전부터 내걸었던 경기부양·탈디플레이션 공약은 이미 난타를 당한 지 오래다. ‘무제한의 금융완화’로 요약되는 그의 경제 재생 공약에 “중앙은행의 독립을 해치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란 비판이 빗발치자 아베가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7일 구마모토(熊本)시 강연에선 “공공투자 확대를 위해 건설국채 전액을 일본은행이 사들이도록 하겠다. 강제적으로 돈을 시장에 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1일 공약발표회장에선 “오해를 풀고 싶다”며 “일본은행이 직접 사들이는 게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사도록 하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당초의 발언이 일본은행의 국채 직접 매입을 금지하는 현행법 위반이란 지적이 제기되자 슬쩍 물러선 것이다. 그가 최근 남발해온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 금융완화를 하겠다”는 발언도 21일엔 “과거 정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금융정책을 펴겠다”는 말로 바뀌었다.

 극단적인 경기 부양과 성장 일변도의 정책방향에 대해 자민당 내부에서도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재정 건전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해온 당내 2인자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은 21일 “금융완화는 재정 관련 규율을 확실히 유지해 나가면서 해야 한다” “금융시장에 돈이 돌면 경기가 좋아져야 하는데 왜 이처럼 경기가 좋지 않으냐”며 아베식 정책에 견제구를 날렸다.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자유무역협정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가와 원전 재가동 여부에 대해 자민당이 애매한 표현으로 피해 간 것 역시 일본 언론들로부터 ‘비겁한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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