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여원 집 사면 영주권 … 스페인 병역 도피의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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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주영이 지난 6월 병역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힌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에 빛나는 스페인이 한국 남자 축구선수들의 ‘병역 회피지’로 주목받고 있다. 2억원 정도만 있으면 스페인 영주권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는 나이(만 37세)까지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 일간지들은 21일 심각한 재정난으로 국가 부도 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의 투자이민 유치 전략을 소개했다.

스페인 정부는 자국 영토 내에 16만 유로(약 2억2000만원) 이상의 주택을 구입하는 이에게 영주권을 주기로 했다.

같은 제도를 먼저 도입한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각각 최저 투자액을 40만 유로(5억6000만원)와 50만 유로(7억원)로 책정한 데 비하면 파격적으로 낮다. 75만여 채의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마련한 이 제도는, 엉뚱하게도 한국에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억2000만원으로 병역의무를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축구계에서도 ‘남자 선수들이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박주영 사태’의 재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박주영(27·셀타비고)은 병역 연기를 목적으로 지난해 8월 모나코 영주권을 취득한 사실이 밝혀져 구설에 올랐다. 박주영은 “병역을 면탈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30대 초반까지 선수로 뛴 뒤 현역으로 입대할 생각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스페인 영주권을 놓고 비슷한 상황이 재발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스페인의 기술축구를 배우기 위해 매년 수십 명의 국내 유망주들이 유학길에 오른다. 2억200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지만, ‘축구 실력 향상’이라는 목적 이외에 ‘영주권’까지 주어진다면 꽤 달콤한 옵션이 될 수 있다. 국적을 바꾸지 않고도 스페인 영주권을 유지하며 30대 중반까지 현역 선수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병역법상 성인 남성의 병역의무 만료 기한은 만 37세다.

 병무청 홍보국 관계자는 “큰 틀에서 봤을 때 임시 영주권자와 정식 영주권자의 병역 관련 혜택은 동일하다”면서 “악용의 소지가 있어도 국외 이주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헌법적인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병무청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유학 전문가들은 병역을 회피하기 위한 축구선수들의 스페인 이주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스페인 유학 전문 컨설팅업체 ‘베네’의 정남시 대표는 “벌써부터 축구선수 아들을 둔 부모들로부터 문의를 받는다”면서도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해외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단지 병역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국행을 선택하는 건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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