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실수로 재판4번?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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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5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2호 법정. 형사합의1부 재판장이 문모(28·여)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이날 세 번째 재판 결과를 받아든 문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던 문씨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숨지게 했다. 구속기소된 후 재판을 받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몸서리치게 싫었다. 통상 재판은 1, 2, 3심으로 끝난다. 하지만 문씨가 항소해 네 번째 재판을 받아야 하고 대법원에 상고하면 다섯 번째가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일부 일선 판사가 실수로 착각을 하거나 피고인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절차를 지키지 않아서다. 현행법이 애매한 것도 이유다.

 사연은 이렇다. 법원조직법은 법정형이 ‘1년 이상’인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합의재판부에 배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씨 범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 징역이다. 그런데 1심 법원인 성남지원은 지난 4월 문씨 사건을 합의부에 배당했다. 법정형이 최저형량이 아닌 최고형량이 정해져 있는 범죄라 단독재판부에 배당돼야 할 사건이었다. 재판장은 이를 직접 심리하기로 했다. 합의부와 단독부의 관할을 정한 법원조직법이 명확하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문씨와 문씨를 무료변론한 변호인 측도 “단독 판사보다 세 명의 판사가 사건을 심리하면 좀 더 심사숙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의했다.

 두 달간의 재판을 거쳐 지난 6월 문씨는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출산 직후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가족의 실망이나 사회적 편견을 비관한 점은 인정하지만 영아를 죽인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문씨 측은 항소했고 2심 재판은 서울고법에서 받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론이 났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 10부(부장 권기훈)는 “단독판사의 관할에 속하는 사건을 합의부가 판결한 것은 법령 위반”이라며 사건을 1심 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문씨는 성남지원 단독판사 앞에서 다시 재판을 받았고 그 결과가 1심 판결과 동일한 징역 1년6월이었다. 꼬박 5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문씨의 경우처럼 전국 고등법원에서 재판부 관할 문제로 파기이송된 사건은 지난해 9건이었고 올해는 10건이다. 사실관계와 법리는 달라진 게 없는데도 절차상의 문제로 이중, 삼중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무면허 운전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38)씨의 경우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는 데 네 곳의 법원을 돌아다녀야 했다.

 단독부에 배당된 사건이라도 단독 판사가 재정합의를 신청해 받아들여지면 합의부가 재판한다. 하지만 일부 법원에서는 피고인에게 이익이 된다며 절차를 밟지 않는다.

 일선 판사 중에서는 “너무 고법에서 깐깐하게 원칙만을 고집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대법원 판례가 없어 법원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며 “입법부에서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면 혼선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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