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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프로그래머가 FBI에게 체포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월 16일 라스베이거스 호텔 주차장에서 美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자신을 체포할 때 드미트리 스클랴로프는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원들은 그에게 신원을 물을 것이고, 그는 러시아에서 온 26세의 선량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러시아 최고의 공대 대학원생이며 미국에는 강연차 방문했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요원들은 착오가 있었음을 깨닫고 그를 풀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FBI 요원들이 노린 표적이었다.

그는 그후 3주 동안 미국에 잡혀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교도소에서 머물던 11일간은 가족들과도 연락할 수 없었다. 그런 후 수갑과 쇠고랑을 찬 채 오클라호마 연방 교도소로 이송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만달러의 보석금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캘리포니아州 샌호제이로 옮겨졌다.

그의 죄목은 ‘어드밴스트 e북 프로세서’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가 다니는 러시아의 엘콤소프트社에서 판매하는 제품이었다.

아도비社의 e북 구매자들은 그 프로그램을 이용해 복사본을 만들 수 있다. 아도비社는 그 프로그램이 인터넷 시대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1998년 의회가 통과시킨 새천년 디지털 저작권법(DMCA)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 프로그램이 아도비社 e북에 내장된 불법복제 방지 소프트웨어를 뚫고 e북 해적판을 불법 유통시킬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도비社측은 FBI에 스클랴로프가 해커 모임인 ‘데프콘’에서 연설한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자체 조사를 마친 FBI는 영문도 모르는 그를 체포했다.

한편 아도비社의 컴퓨터범죄 수사팀에는 첨단기술업계의 인권운동가들로부터 비난이 빗발쳤다. 그중에는 아도비의 고객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그러자 아도비社는 스클랴로프를 기소하는 것이 더이상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DMCA 지지를 재확인한 아도비社가 그런 발표를 한 것은 스클랴로프를 기소함으로써 야기될 문제들을 피하기 위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런 태도변화는 스클랴로프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FBI는 앞서 아도비社의 요청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아도비社가 입장을 번복했다고 수사를 종결한다면 민간기업이 형사 사건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민간기업이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게 만든 것은 의회였다. 특히 불법복제 방지 소프트웨어를 뚫는 프로그램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보를 유포하는 것도 금지한 DMCA의 조항을 보면 그렇다.

그에 따르면 출판사·음반사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는 것 같다.

프린스턴大의 에드워드 펠턴 교수가 디지털 음악 암호화 시스템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려 하자 美 음반업협회(RIA)는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논문 발표 계획을 철회했다. 그런 위협의 여파로 일부 단체들은 세미나와 회의장소를 재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할 경우 발표자들이 피소되거나 징역형을 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600誌의 발행인 에릭 콜리는 DeCSS라는 프로그램이 있는 사이트를 홈페이지에 링크시켰다가 법정에 섰다.

이 프로그램은 노르웨이에서 사는 15세 소년이 개발한 것으로 업계표준인 DVD 복제방지 기술을 해독해 리눅스 기반 컴퓨터에서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했다. 음반업계는 그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금지 소송을 냈고 콜리의 잡지가 소환됐다.

지난 봄에 있었던 항소심에서 검찰측은 이 법이 역시 웹사이트를 금지된 프로그램에 링크시킨 뉴욕 타임스 같은 더 ‘책임 있는’ 간행물들은 규제하지 않는다고 판사들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2600誌의 링크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다른 간행물도 사이트의 모든 링크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그것은 웹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스클랴로프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가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는 까닭은 그의 소프트웨어가 상업적으로 유통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클랴로프는 러시아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그 프로그램을 판매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고용주였다.

그 프로그램이 불법복제를 부추긴다는 것도 비약이다. e북을 불법 유통시키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실제 서적을 디지털 형태로 간단히 스캔할 수 있다. 한편 그 소프트웨어는 합법적 사용의 측면도 있다.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정당한 용도’(가령 개인용도의 복사)로 그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드미트리 스클랴로프는 디지털 시대에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미디어 거물들의 음모에 휘말렸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는 “내가 감옥에 가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돈이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돈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의 그런 생각을 바로 잡아주는 것도 좋겠지만 실제로 상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의회가 언론의 자유와 소프트웨어의 정당한 사용을 가로막고, 우리가 개발하는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의 링크가 불법이 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스클랴로프의 첫번째 생각이 옳다고 본다. 미국에서 뭔가 실수가 있는 것 같다.

글 : Steven Levy 기자
자료제공 : 뉴스위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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