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끄떡없던 포스코마저 … ”

“포스코 곳간에 현금이 바닥났다는데 포항 경기가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지난 14일 경북 포항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죽도시장의 정상운 상인회 사무국장은 혀를 차면서 말을 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포스코가 버티고 있어 지금보다 나았지요. 그나마 도로 신설로 포항 근접성이 좋아지면서 외지인들이 죽도 수산물 시장을 찾고 있어 버티는 정도입니다.”

　대표적 철강도시 포항의 민생 현장 수준은 바닥이었다. 세계 철강시장이 쪼그라든 영향으로 포스코와 철강산업단지에 입주한 300여 개의 철강사가 비상에 돌입한 탓이다. 포항상공회의소 배용조 차장은 “철강기업 직원들이 성과급을 두둑이 챙기고 회식비가 넉넉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경기는 얼어붙은 수준”이라며 “포항의 철강인들은 현재 바짝 엎드린 상태에서 철강경기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포항 철강산업단지 내 일부 철강사는 넘치는 재고를 감당할 수 없어 공장 내 승용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쌓아뒀다. 바깥 도로에서도 공장 내 수북이 쌓인 철강재가 육안으로 확인될 수준이었다. 또 다른 공장은 아예 가동을 멈췄는지 연기를 뿜지 않는 굴뚝이 흔했다.

　포스코 또한 지난달부터 포항의 전기로 열연공장 생산량 2만7000t을 감산하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이후 4년여 만의 감산이다.

　이 같은 위기상황은 간판기업인 포스코마저 다음 달 5일 초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게 만들었다. 무리하게 계열사를 확장해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경기침체·공급과잉 악재가 겹치면서 흔들리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2010년 7조원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포스코는 인수합병(M&A)과 시설·광산 투자로 보유 현금액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계열사 수도 2007년 4월 23개였으나 이후 점점 늘어나 올 4월 70개로 불었다. 같은 기간 삼성은 계열사를 22개, 현대차는 20개 늘렸다.

　의욕적으로 인수한 신규 계열사들의 좋지 않은 재무구조는 현금이 마른 포스코에 위기 증폭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성진지오텍을 포함한 23개사가 적자를 기록했고, 리코금속 등 15개사는 자본 일부 잠식 상태에 빠졌다. 철강 생산에 들어가는 철광석과 석탄 값이 60∼70% 오르는 대신 철강재 판매가격은 공급과잉으로 최근 3년 새 20∼30% 떨어졌다. 이로 인해 영업이익률은 2007년 15.6%에서 2011년 7.9%로 반 토막 났다. NH농협증권의 장우진 연구원은 “앞으로 사업 연관성이 낮은 자회사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가 얼마나 개선될지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모든 그룹에 켜진 비상등=다른 그룹들도 마찬가지다. 포스코 비상등이 좀 더 빨갛게 켜졌을 뿐이다. 삼성은 올 5월 이건희 회장이 유럽과 일본을 둘러보고 귀국하면서 “상황이 생각보다 더 나쁜 것 같다”고 언급한 뒤 임원 조기출근과 절주 캠페인을 실시하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LG 구본무 회장은 18일 계열사들로부터 올 상반기 실적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경기가 어려울 때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미래상품과 기술 개발, 핵심인재 확보를 통해 경기침체기에도 탄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룹 관계자는 “이번 실적보고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올 6월 10대 그룹 중 처음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한 롯데는 롯데스퀘어·롯데햄·케이피케미컬 등의 계열사를 합병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내수 중심 업체들의 위기감은 더 크다. 롯데·신세계 백화점은 전 점포 외부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지난해 것을 재활용했다. 장식에 들어가는 돈은 점포당 1억~2억원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절약하는 비용 자체는 10억원 내외로 많지 않지만 연말 분위기 자체가 밝지 않아 이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화점의 매출은 올 6월부터 넉 달 연속 감소했다.

　대형마트 역시 이마트에서 한 사람이 구매하는 금액인 객단가가 지난달 5만원 아래로 떨어지며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