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950만 가구 디지털 사각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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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케이블 방송 디지털 전환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 지상파 방송 완전 디지털화가 한 달여 남은 가운데 정작 전체 시청자의 70% 정도가 가입한 케이블 방송 디지털 전환 대책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2012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에서 전문가들은 디지털 TV 시청환경을 완성하려면 케이블 방송 디지털 전환에 대한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상파 위주의 디지털 전환=정책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준비가 거의 완료됐기 때문에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학계·업계에서는 실제 케이블을 통해 지상파를 시청하는 가구가 많다는 현실을 외면한 반쪽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케이블 방송에는 1470만 가입자(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집계, 7월 기준)가 있다. 이 중 1000만 가입자가 아날로그 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디지털 방송의 고화질(HD) 영상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정재훈 사무관은 “내년부터 케이블 방송사(SO)들이 ‘클리어 쾀(Clear QAM)’ 기술을 이용한 월 4000원 내외의 저렴한 디지털 요금제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디지털 케이블 신호는 도둑 시청을 막기 위해 ‘쾀(QAM)’ 방식으로 암호화돼 전송된다. 암호를 풀 수 있는 셋톱박스가 필수다. 매달 5000원 안팎의 셋톱 임대료는 시청자가 내야 하는데, 클리어 쾀은 셋톱을 TV 속에 넣는 격이라 그만큼 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나 방통위는 아날로그 케이블 1000만 가입자 중 저소득층 가구만 이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제할 방침이다. 게다가 클리어 쾀으로 디지털 방송을 보려면 클리어 쾀 전용 TV를 장만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방통위가 배정한 예산은 전무한 상태다.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케이블TV는 국가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에 방통위가 케이블의 디지털 전환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시청 사각지대=현재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 중 저소득층은 50만 가구 정도로 추정된다. 클리어 쾀 방식을 도입해도 나머지 950만 가입자는 사실상 디지털 전환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지상파 디지털 전송 방식인 8VSB 방식을 케이블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8VSB 방식으로는 기존 디지털 TV로도 셋톱박스 없이 고화질(HD)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현재 디지털 TV에서 7-1, 11-1 형태로 번호가 표시되는 HD 채널이 8VSB 채널이다. <그래픽 참조>

 미디어전략연구소 김희경 박사는 “현재 방통위 고시에 따라 지상파는 8VSB 방식으로, 케이블은 쾀(QAM) 방식으로 전송하도록 묶여 있다”며 “방통위 고시를 일부 바꿔 케이블 채널도 8VSB로 전송하게 되면 아날로그 1000만 가입자가 당장이라도 HD방송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케이블방송사(SO) 관계자는 “SO들이 오래전부터 방통위에 8VSB 허용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8VSB는 기존 디지털TV에도 칩셋이 내장돼 있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장점 때문에 일부 SO는 이미 호텔과 병원 등에 8VSB 방식으로 HD방송을 서비스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토론의 사회를 맡은 한진만 강원대 교수는 “방통위 디지털 정책이 근시안적이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8VSB나 쾀 같은 기술 기준이 엄청난 규제로 작동해 디지털 전환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봉지욱 기자

◆클리어 쾀=새로 도입될 디지털 케이블 방송 전송방식. 셋톱박스를 칩 형태로 TV 안에 넣어 HD 방송을 볼 수 있다. 2013년 이후 출시되는 TV에 적용될 예정이다.

◆8VSB=디지털 지상파 방송 전송방식. 아날로그 케이블에서는 7-1, 9-1 형식으로 번호가 표시된다. 지상파 이외의 채널은 8VSB 방식으로 전송이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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