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마켓 워치] 자본시장법 개정 또 물 건너가 … 망하는 증권사 나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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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기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풍비박산이다. 한국의 증권업 얘기다. 주식 거래가 줄어도 너무 줄었다. 1~2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펀드 계좌는 절정기였던 2008년과 비교해 900만 개나 감소했다. 증권사 지점의 90% 이상이 적자다.

 “1998 외환위기 때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이렇진 않았다. 주가가 떨어지면 오히려 싸게 사려는 주문이 들어와 거래는 늘기도 했다.” 30년째 시장을 지켜본 한 증권사 임원의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터널이 꽉 막혀 버린 느낌이다. “머지않아 망하는 증권사가 속출할 것 같다”는 소리도 나온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주식 거래 위축은 요즘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다. 그러나 한국이 유독 심하다.

 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한국 증권사들은 수익의 60~70%를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에서 올리는 기형적 영업구조를 갖고 있다. 고객들로 하여금 주식을 끊임없이 사고팔도록 만들어야 존립이 가능하다. 투자은행(IB)이나 종합자산회사로의 변신을 벌써 십수 년째 얘기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펀드 판매는 또 어떤가. 어떤 펀드가 좀 된다 싶으면 우르르 판박이 펀드를 쏟아내 ‘쏠림 투자’를 조장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시장이 꺾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나몰라라 했다.

 그래도 증시 전체의 유동성이 풍족할 땐 그럭저럭 통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지금 한국 증시의 상황을 한마디로 ‘판돈 고갈’로 봐야 할 것 같다. 중산층의 몰락이 가장 큰 이유다. 그래도 투자 리스크를 감수하며 증시에서 주식과 펀드를 사고파는 쪽은 중산층이었다. 투자 원금은 수천만원이 주류다. 금융자산 수억~수십억원대 부자들은 어지간해선 위험자산에 투자하지 않는다. 일부 주식을 해도 우량주에 묻어두지 자주 사고팔지 않는다. 증권사로선 돈이 안 되는 고객이다.

 한국의 중산층 투자자들은 지금 밑천이 바닥났다. 증권사들의 장단에 맞춰 끊임없이 주식을 사고판 결과다. 과다한 수수료에 투자 손실까지 겹쳤다. 그나마 남아 있는 돈은 소득 감소와 주택대출 부담 때문에 빼가는 중이다.

 증권사들로선 대변신만이 살길이다. 투자자들의 노후·재무설계를 돕는 동반자로 거듭나야 한다. 벤처기업이나 인수합병(M&A) 등에 돈을 대고 수익을 얻는 IB 신사업도 개척해야 한다. 업계도 그런 방향의 혁신을 다짐한다. 이를 위해선 규제 완화 등 제도적 환경의 변화가 절실하다. 정부가 자본시장법을 고쳐주려고 2년째 뛰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에 부닥쳐 법 개정이 또 무산됐다. 희한한 것은 여기에 ‘경제민주화’ 논리가 동원됐다는 사실이다. 법 개정에 따른 IB 육성이 대형사 위주라는 게 반대 이유다. 중소형사들이 소외될 것이니 경제민주화에 역행한다고 야당은 주장한다. 덩치 크고 실력 있는 증권사부터 리스크를 감당하는 영업에 나서도록 하는 게 상식이건만, 그럴 거면 아예 다 못하도록 막자는 얘기다. 이렇게 하향 평준화되면 결국 망하는 증권사가 더 많아지고, 일자리는 더 줄어들 게 뻔하다. 그게 야당이 원하는 경제민주화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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