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일본의 실패마저 따라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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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 경제가 다시 추락하고 있다. 일본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9%, 연율로는 3.5% 감소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공공투자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수출과 설비투자, 민간소비가 모두 쪼그라들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 이어 또다시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일본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소비세율 인상도 물 건너갈 수 있다. 어제 중앙일보에 보도된 일본 현지 분위기는 흉흉하다. 국제경쟁에서 밀려난 소니·파나소닉·샤프·후지쓰 등이 국내 공장을 폐쇄·축소하면서 기업 조카마치(城下町·성 아랫마을)들이 황폐화되고 있다. 성장 엔진인 기업이 죽으면 주변 마을도 시들기 마련이다.

 일본 경제의 실패 원인은 복합적이다. 부동산·주식의 거품 붕괴에 이어 엔화 강세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일본 정치권은 근본적 수술은 미룬 채 공공투자 확대와 금리 인하에 골몰해 재정만 악화시켰다. 여기에다 급격한 고령사회까지 겹치면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일본의 침몰은 우리의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우리 경제도 벌써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드는 조짐이다. 잠재성장률이 꺾이면서 언제 일본처럼 제로 성장에 빠질지 모른다. 급속히 고령사회로 치닫는 것도 일본과 닮은꼴이다. 우리 정치권도 일본처럼 선거 때마다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며 복지 포퓰리즘에 매달리고 있다.

 일본의 비극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미리 대비해야 한다. 기업을 때리기보다 ‘기업하려는 마음’을 불어넣는 게 중요하다. 정규직 귀족노조들은 ‘일하려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잠재력이 확충되고 경제가 지속 가능한 궤도로 굴러갈 수 있다. 일본처럼 기존의 성공 신화에 사로잡혀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 더 이상 수출 대기업 중심의 기존 구조로는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대(大)전환기다. 세계시장에 통하는 수많은 중견기업과 강소(强小)기업을 키워내야 내수가 확대되고 고용문제도 풀 수 있다. 이웃 일본의 실패에서 배울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