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다음 대통령, 지역 패거리에서 벗어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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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네 가지 숙제를 지니고 있었다. 이 중 김영삼은 문민정부, 김대중은 여야 간, 영호남 간 권력교체를 이뤄냈다. 네 번째 숙제 세대교체는 노무현이 달성했다. 숙제 4개는 마쳤지만 한국 정치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오랜 과제가 하나 있다. 집권세력이 출신 지역으로 핵심 인사(人事)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런 지역 독점은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 요인이다.

 역대 정권은 지역적 권력독점을 줄이려 인위적인 실험을 하곤 했다. 대표적인 게 총리 인선이다. 경상도 출신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이명박은 경상도 총리를 소수로 제한했다. 영남 대통령들은 호남 총리를 기용하는 적극적인 인사를 하기도 했다. 전두환은 김상협·진의종, 김영삼은 황인성·고건, 노무현은 고건, 이명박은 김황식을 썼다. 호남 대통령 김대중은 경상도 출신 박태준을 총리로,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중용했다. 이런 시도는 정권의 성의를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총리 권한 자체가 미미한 데다 정권 전반의 의식 자체가 ‘지역 독점’에 갇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권마다 지역이란 유령이 공정(公正)을 유린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는 TK(대구·경북) 전성시대였고, 김영삼은 ‘부산 갈매기’ 권력이었다. 김대중 시대는 호남 한풀이였고, 노무현 때는 부산정권이냐 호남정권이냐는 싸움이 붙었다. 이명박 정권은 한 술 더 떴다. 영포(영남·포항)라는 협소한 지역파벌이 권력을 독점한 것이다. 역대 정권의 대통령과 실세는 4대 요직을 중심으로 지역 파벌을 챙겼다. 인사담당관을 포함한 청와대 국·과장에도 지역 독점의 광맥이 뻗쳤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모두 국민통합과 정치쇄신을 외친다. 통합과 쇄신의 요체는 결국 인사다. 아무리 통합을 부르짖고 제도를 바꿔도 인사가 지역에 갇혀버리면 정권은 또다시 전리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박은 대구, 문·안은 부산이어서 다음은 영남 대통령으로 예정돼 있다. 수십 년 동안 들었던 단어, ‘영남’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음 대통령은 더욱 각별히 특정 지역의 권력 독점을 경계해야 한다. 조선시대 영·정조와 같은 마음으로 전국에서 고루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총리·비서실장 같은 4대 요직은 물론 정부 전반에서 지역적 균형정책을 펼쳐야 한다. 호남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영·호남의 갈라먹기도 안 된다. 경기·충청·강원 등 타(他) 지역에서도 널리 인재를 찾아 총리 같은 요직에 중용해야 한다. 집권하면 박근혜는 ‘영남’이란 오래된 단어와 싸워야 한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공동정권의 양축이 모두 부산 출신이면 특정 지역의 인사 독점을 막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역 인사 균형은 인위적이고 기계적이어도 좋다. 이런 실험은 5년, 10년 나아가 수차례 정권을 거쳐야 한다. 그러면 지역 갈등이라는 고질을 상당부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후보들은 ‘새 정치’를 합창하고 있다. 헌 정치는 패거리와 불공정의 정치였다. 지역 패거리가 인사를 독점하는 한 공정은 절대 실현될 수 없다. 인사가 만사이기 때문이다. 새 정치는 패거리를 분해하여 다시 조합해야 한다. 권력의 ‘공정한 공유’로 사회를 다시 조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