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투자 고객손실 "투신서 배상" 판결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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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지시나 채권금융기관의 자율 협의에 따른 것이라도, 해당 기업이 부실하다는 것을 알면서 투자한 투자신탁회사는 이로 인한 손실을 고객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사실상 금융당국의 지시에 의해 채권금융기관들이 부실 기업을 지원해 오던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또 이번 판결로 대우그룹 회사채와 관련된 손실에 대해 추가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최철 부장판사)는 20일 전기공사공제조합이 한국투자신탁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1천9백여만원을 지급하라" 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999년 5월 한국투신증권에서 30억원어치의 수익증권을 산 전기공사공제조합은 대우 위기가 심각해지던 99년 7월 한국투신증권이 대우 회사채를 사들여 펀드에 집어넣고, 이후 대우채 환매가 연기되는 바람에 4억6천여만원의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국투신증권이 대우의 자금사정이 극히 악화된 상태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우채를 신규 취득한 것은 펀드 가입 고객에 대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 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한국투신증권이 대우 지원을 위한 금융당국 지시나 채권단 결의를 어쩔 수 없이 따랐다고 해도 이는 한국투신증권과 금융당국.채권단 사이의 문제일 뿐 투자자에 대한 책임까지 면할 수 없다" 며 "금융당국도 구체적인 신탁재산 운용을 특정해 지시한 바 없다" 고 밝혔다.

채권금융기관 자율 협의나 금융당국의 지시와 관계없이 투자신탁회사가 고객 자산을 엄격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99년 7월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대우그룹의 유동성 위기와 관련, 금융기관들이 99년 상반기에 회수한 자금 4조원 가량을 다시 대우그룹에 지원하도록 지시해 채권금융기관들은 회수했던 대우 회사채를 다시 매입했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부실 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 등 채무 재조정을 통해 지원하는 게 힘들어질 전망이다. 투신사들은 이미 현대 계열사의 채무 재조정과 관련, 고객 자산으로 이뤄진 투자이기 때문에 재조정이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선구.김승현 기자 su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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