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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대졸 백수 무차별적 반값 등록금이 그 수를 보태지는 않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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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강일구]

잘 아는 시골 언니가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탓에 늘 배움에 목말라했다. 온갖 일을 하며 열심히 살다가 비슷한 남자 만나 결혼해서 아들도 낳았다. 농촌에서 뼈 빠지게 뒷바라지해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고 졸업하는 날에는 부부가 펑펑 울었단다. 못 배워 서러웠는데 이제야 소원 풀었다고.

 매년 학생 모집하느라 쩔쩔매는, 가고 싶은 사람은 다 갈 수 있는 그런 대학을 졸업한 탓인지 불경기 탓인지,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놀고 있다. 일손이 부족해도 언니 부부는 그 아들에게 농사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런 일은 못 배운 자기들이나 하는 거지 대학까지 나온 아들은 근사한 직장이 맞는 거라면서. 그 덕에 아들은 읍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나 슬슬 하며 노는 중이다. 없을 걸 뻔히 알면서도 좋은 직장 구한다며 3년째 청년백수다.

 7일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 비경제활동인구는 238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만6000명이 늘어, 전체 20대 중에서 비경제활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38.4%로 지난해 9월보다 0.7%포인트 증가했다고 한다.

 일을 하지도, 일을 구하지도 않는 청년백수가 10명 중 4명이나 된다는 거다. 이 현상은 경기침체 속에 기업들이 신규채용 대신 경력직을 선호하고 있고, 청년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취업을 미룬 탓이라고 하는데. 비경제활동인구는 학업이나 취업준비, 육아, 가사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더 나은 직장. 누구든 원한다. 많은 청년백수들이 ‘더 나은 직장’을 고대하며 기약 없이 놀고는 있지만 온 세계가 불경기인 지금 ‘더 나은 직장’이 언제쯤 생길지 누구도 모른다.

 엊그제 해마다 김장 신세를 지고 있는 그 언니 집에 김장을 가지러 갔다. ‘대학만 나오면 다 잘 풀릴 줄 알았더니 아닌가 봐.’ 언니의 하소연이 깊다. ‘그래도 소원 풀었잖아.’ 위로하고는 돌아왔다. 대파 키우고 고구마 키워서 대학등록금 만들려면 힘 많이 들었을 터인데.

 대통령 후보 모두가 내건 공약, 반값 등록금. 굳이 대졸일 필요 없는 곳도 대졸을 원하는 세상이니 다들 대학 가려 한다. 대졸이 예전 고졸만큼이나 많아졌다. 지금도 우리나라 대졸자 수가 세계에서 제일 많다는데 등록금까지 반값이면, 공부를 좋아하건 않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갈 거다. 졸업 후 부모가 해주는 밥 먹으며 빈둥댈지언정 다들 갈 거다.

 대졸 체면에 3D업종은 차마 할 수는 없고 ‘더 좋은 직장’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세월. 그들을 바라보며 늙어가는 부모님들. 백수 될 줄 뻔히 알면서도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가정환경 상관없이 모두에게 돈 보태준다는 후보들이나. 차라리 그 돈으로 청년들이 평생 자기 밥벌이할 수 있는, 다른 도울 거리는 정말 없는 걸까.

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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