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선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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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30면

아침 뉴스에 수험생들의 우울증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아직 세상에 대해 호기심도 많고 열정적이어야 할 그들이 우울증이라니.
많은 청소년이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으로 대학 입시를 생각한다. 10대를 마감하는 청소년들이 성인으로 발돋움하려는 첫 번째 관문으로써,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이후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무슨 대학, 무슨 과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진학 대신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인가. 물론 그 후에도 더 많은 선택, 즉 결혼, 배우자, 직장 등을 고르는 기로에 서게 되지만, 이 시기의 선택이 첫 번째 단추가 되는 것인 만큼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인생의 삼분의 일을 살아온 나도 선택의 순간을 많이 겪었다. 첫 번째는 12세 때 선화예술중학교와 예원학교 두 학교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였다. 다음은 14세 때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로 유학을 갈지 한국에서 계속 공부를 할지였는데, 사실 유학은 선택이 아니라 나에겐 꿈이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고민보다는 나의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이 더 컸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혼자만의 러시아 유학 생활은 너무도 힘들었고 외로웠다. 19세 때는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후 그곳에 있는 발레단에 입단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발레단에 입단할 것인가였는데, 아마도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했고 수석무용수로서 많은 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5년 후 프리마돈나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버리고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일반무용수로서 입단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게 되는데,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 새로운 도박이었다.

그러나 입단하자마자 찾아온 발목 부상과 그로 인한 1년이 넘는 슬럼프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고, 발레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가장 큰 좌절의 시기였다. 그 후 부상과 슬럼프를 이겨내고 네덜란드에서 수석무용수가 되었고,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또 다른 나의 새로운 선택이었다.

이러한 선택들이 모두 핑크빛 꿈으로 다가온 건 아니었다. 모든 선택에는 후회를 초래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힘든 시기와 슬럼프를 수없이 겪으며 남들이 생각하는 안정적인 순간에 항상 또 다른 선택을 했다. 그것은 도전이 될 수도 있었고, 무모할 수도 있었으며,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하든 후회하거나 만족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선택이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모두 이뤄지는 것들은 아니었다. 내가 선택했지만 선택을 받느냐, 선택받지 못하느냐는 또 다른 선택의 문제였다. 하지만 선택을 한 순간부터 그 상황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선택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후회하기보다 그 상황을 인정하고 극복해나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른 걸 선택했더라도 똑같은 후회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10대에는 미래의 꿈에 대해, 20대에는 꿈에 대한 좀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진로에 대해, 그리고 20,30대에 걸쳐 결혼, 직장이라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식, 부모, 직장과 주변 지인들에 관계된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그때의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는 우리가 미래를 예견할 수 없기에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의 선택이 올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인생의 좌절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의 끝은 아닌 것이다. 나도 슬럼프로 인해 인생의 좌절을 맛봤을 때는 그것이 인생의 끝이고 희망의 문은 닫혀서 절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그 문을 조금씩 열게 하여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었고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실패와 많은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실패는 끝이 아니며 또 다른 시작이고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김지영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역임했다. 1999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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