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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히스토리] 마이애미 히트 (4)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첫 플레이오프 진출

91~92시즌을 앞두고 히트는 계약기간이 만료된 감독 론 루스테인과 재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팀을 맡지 못했다. 재계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임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루스테인은 비록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신생팀인 히트를 이끌고 3시즌 동안 57승 189패의 성적을 남기고 팀을 떠났다.

그의 뒤를 이어 히트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이는 케빈 로커리(현 TNT 방송 해설위원)였다.

마이클 조던의 신인 시절(84~85시즌) 감독이기도 했던 그는 히트를 맡기 전에 필라델피아 세브티식서스, 애틀란타 호크스, 뉴욕 네츠, 뉴저지 네츠, 시카고 불스, 워싱턴 불레츠의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특히, ABA 시절 뉴욕 네츠를 우승으로 2차례 이끌며 경험 많은 감독으로 명성이 높았다.

로커리가 부임하고 나자 히트는 1991년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 추첨에서 1라운드 5순위 지명권을 가지게 된다.

당시 드래프트에 참가한 선수들 중 1순위 지명이 유력했던 래리 존슨을 제외하고 같은 네바다 라스베가스대학(UNLV) 출신의 스테이시 아그먼드 혹은 센터 재원을 데려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히트가 선택한 것은 미시건주립대학 출신의 가드 스티브 스미스였다.

스미스는 대학 재학 시절 큰 키(203cm)에도 불구하고 포인트가드를 보기도 해 학교 선배인 매직 존슨과 종종 비교되기도 했던 유망주였다. 이미 히트에는 글렌 라이스를 비롯해 셔먼 더글라스, 윌리 버튼, 케빈 에드워즈 등 많은 수의 가드 유망주가 있기에 비효율적인 선택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로커리를 비롯한 코칭 스테프와 단장인 빌리 커닝햄의 선택은 단호했다.

그들은 이러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의 프랜차이즈를 구성할 계획을 세웠고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가드 진의 포화 상태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시즌 초반 아무도 팀의 선전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7승 3패의 좋은 출발을 보였다. 더글라스, 라이스, 스미스 3명의 가드를 동시에 기용하는 전술은 좋은 결과를 낳았고 시즌 막판 9경기 연속 패배라는 슬럼프를 겪었으나 남은 6경기에서 4승을 올려 38승 44패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여기서 히트에겐 대단한 행운이 따른다.

당시 히트는 애틀란타 호크스와 승패가 같았다. 남은 동부 컨퍼런스 8위 한 자리를 놓고 동률인 두 팀이 맞서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상대 전적까지 2승 2패로 같게 되었다. 하지만 히트의 디비전 순위가 더 높았기 때문에 결국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마지막 티켓의 주인공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팀으로선 다른 신생팀들 중에서 가장 먼저 플레이오프 무대를 경험하게 된 셈이었다.

◇ 값진 플레이오프 경험

플레이오프 진출의 기쁨도 잠시 히트의 행운은 여기까지 였다.

어차피 플레이오프 8번 시드였기 때문에 최강팀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들이 만난 상대는 너무나 벅찼다.

바로 90~91시즌 우승팀인 시카고 불스였다.

신생팀답게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히트는 불스를 맞이해 처음 두 경기는 정말 너무나 무기력하게 내주고 만다. 선수들은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의 플레이를 보기만 했고 그들에게는 수비와 어떻게든 점수 차를 줄이려 하는 의지마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쉽게 물러서진 않았다.

어쩌면 아니 시리즈 최종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마이애미에서의 3차 전. 히트는 그들의 홈 팬들 앞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경기 결과는 히트의 패배였지만 119-114로 그전의 두 경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비록 최강팀 불스를 맞아 단 3경기만에 끝난 플레이오프였지만 팀에게는 매우 값진 경험이었고 다가올 새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 (5)편에 계속

류한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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