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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 한 자, 35만 자 … 신앙의 글 서예로 다시 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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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구당 여원구 선생이 쓴 『법화경』 방편품(方便品)의 한 구절(왼쪽),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 [사진 한국미술관]
여원구

옛 선인들은 글씨를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여겼다. 『정조이산어록』에 등장하는 ‘마음이 바르면 글씨가 바르게 된다(心正則筆正)’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서(隸書)의 대가이자 대한민국 국새 글씨를 새긴 전각가(篆刻家)인 구당(丘堂) 여원구(80) 선생. 그의 글씨는 기교와 억지가 없는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구당의 예술세계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리는 ‘구당 3교성서전(三敎聖書展)’이다.

 지난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8년만이다. 불교과 유교·기독교의 대표 경전을 서예로 선보이는 방대한 작업에 도전했다. 300여 작품에 총 35만자의 글씨가 담겼다. 특히 구당의 주특기인 예서와 해서(楷書)를 비롯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쓰인 서체인 호태왕비체(好太王碑體)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서체가 동원됐다.

서예 작업에 주로 쓰이는 화선지가 아닌 삼베지와 전통 한지에 글을 쓴 것도 특징이다. 삼베지와 한지는 화선지와는 다른 먹색과 번짐으로 글씨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내구성이 강해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전시에서는 유교의 대표 경전 『논어』의 전문 1만 5937자를 해서체로 쓴 10폭짜리 병풍 작품이 선을 보인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등 논어의 명구들은 30여점의 소품으로 따로 작업했다. 불경 중에서는 『법화경』 전문을 각각 호태왕비체와 해서체로 적었으며, 『반야심경』을 예서와 해서, 전도체로 썼다. 『성경』에서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 담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山上垂訓) 4445자를 국·한문을 섞어 6폭짜리 병풍에 적었다.

 『금강경』 전문을 새긴 전각 작품도 전시된다. 옛 진한(秦漢)시대에 쓰이던 전각에서 현대적인 도장까지 다양한 모양과 필체의 전각 형식을 총망라한 이 작품은 2년여에 걸쳐 완성됐다. 구당은 “3대 종교의 경전을 옮겨 적으며 각 종교가 믿음의 형식은 다르지만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기본 사상은 같다고 느꼈다”며 “흘려쓰기나 기교 등을 최대한 배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공을 들여 작업했다”고 말했다. 02-720-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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