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문학상 후보작] 성석제 '황만근은…'

중앙일보

입력

성석제의 소설은 재미있다고들 한다. 시인이었던 성석제가, 1990년대 중반부터 소설로 장르 이동을 하고 발표한 여러 소설들은, 사람들을 조금씩, 서서히 웃겼다. '웃기네' 하다가 웃고, 웃다가 그의 소설로 빠져들어 갔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그의 웃김이 코미디의 웃김이 아니라, 1980년대식 거대 서사가 힘이 빠져버린 뒤 자신의 소설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서사 전략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웃기기 위해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소설을 위해서 웃기게 쓴 것이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도 웃기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황만근은 작은 농촌 마을에서 반푼이로 취급받는 가난한 농부다.

아버지는 전쟁 때 죽고 유복자로 태어나서 편모 슬하에 자랐다. 그는 지능이 조금 모자라는 듯해서 마을 아이들에게까지 늘 놀림감이 되었다. 육체는 부실해 늘 넘어졌고, 혀가 짧아 발음도 부정확했다.

운이 좋아 자살하려는 처녀를 구한 덕에 아들 하나를 얻게 되지만, 여자는 곧 그를 떠나 버린다. 그때부터 그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아들을 부양하고, 마을 공동체에 봉사한다. 염습과 산역, 마을의 똥구덩이를 파는 등의 울력, 가축 도살 등의 궂은 일은 늘 황만근이 도맡아 했다. 별을 보고 일어나 별을 보고 잠드는 삶을 계속했다. 대가도 없었고, 스스로 공치사를 바랄 지능도 없었다.

그런데 그 황만근이 마을에서 없어졌다. 신체검사를 받던 날 외엔 평생 하루도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던 그가 사라졌다. 그의 부재는 곧 마을의 불편으로 다가왔다. 마을 회의가 소집되고 그를 찾기 시작했다.

'농가 부채 탕감 촉구 전국 농민 총궐기 대회' 가 원인이었다. 마을 이장은 마을에서 빚없는 유일한 농민 황만근의 참가를 종용했다. 모두들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대회에 나갔지만, 황만근은 마을 이장의 지시대로 백리길을 경운기를 끌고 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대회는 끝나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간고등어를 사 가지고 어둠 속의 국도로 돌아오다 질주하는 차들에 의해 논바닥에 쳐 박혀, 죽었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뼈로 마을로 귀환했다.

이 소설은 "농사를 짓되 땅에서 억지로 빼앗지 않고 남으면 술을 빚어 가벼운 기운은 하늘에 바치고 무거운 기운은 땅에 돌려준" , "술의 물감으로 인생을 그려나간" , 선인(仙人) , 황만근 약전(略傳) 이기도 하다.

리얼리즘에 인습적으로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황당한 이야기로 비쳐질지 모른다. 약간의 과장과 골계와 해학이 읽는 자를 당황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이면에 있는 정제된 현대판 계세징인(戒世懲人) 의 정신은, 둘러서 말하되 정곡을 찌른다. 각종 부채에 파산지경의 농촌 현실을, 또 인정(人情) 마저 황폐해 가는 우리 삶의 어두움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같이 슬프게 그려낸 소설은 근자에는 보지 못했다.

그렇게 보면 성석제 소설은 문장의 '재미' 와 삶의 곡진한 '슬픔' 이 공존하며, 그것이 그의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내면 독백과 키치의 유행 와중에 전통 산문의 장르인 전(傳) , 찬(贊) , 기(記) , 명(銘) , 잠(箴) 을 현대 소설에 접목시켜 서사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성석제의 고군분투는 충분히 평가할 가치가 있다.

성석제는 황만근을 엎드려 곡하며, 발바닥으로 독자를 웃기고 울리고 있다. 그를 따라 웃고 우는 일도 피서법 중의 하나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

***성석제 약력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86년 문학사상 '유리 닦는 사람' 발표, 데뷔.

▶소설집 『그곳에 어처구니가 산다』『새가 되었네』『재미나는 인생』등

▶한국일보문학상(97년) .동서문학상(2000년) 등 수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