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병치레는 누가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0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말뜻을 명확하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대충 이런 뜻이겠거니 하고 쓰다 보면 엉뚱하거나 어색한 문장이 되고 만다.

 “마을회관 뒤 앵두나무집 할머니께서 85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동갑내기 남편 병치레를 해오시다가 엊그제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셨다.” 이 문장에선 ‘병치레’가 이상하게 쓰였다. 병치레는 병을 앓아 치러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병치레를 했다면 남편이 직접 병을 앓아 치러낸 것이다. 할머니가 남편을 간병(看病)한 것이므로 ‘병치레’가 아니라 ‘병구완’(앓는 사람을 돌보아 주는 일)으로 고쳐야 옳다.

 “양측이 극적인 화해를 이뤘지만 앙금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앙금’은 원래 녹말 따위의 아주 잘고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을 이르는데, 여기서 나아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개운치 않은 감정을 비유적으로 가리키게 됐다. 즉 ‘앙금’ 자체가 가라앉아 있는 것이므로 ‘앙금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앙금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로 바꾸어야 한다.

 “욕을 많이 하면 어휘력이 짧아지고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동반하게 된다.” ‘어휘력(語彙力)’은 어휘를 마음대로 부려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이 문장에선 ‘어휘력이 짧아지고’라고 썼다. 능력은 부치거나 모자라거나 넘친다고 하지 짧다고 하지 않는다. ‘어휘력이 짧아지고’가 아니라 ‘어휘력이 빈약해지고’로 바루는 게 맞다.

 “물가인상에 따라 수업료가 오를 수는 있겠으나 현재 대학교들의 계절학기 수업료 인상은 너무 잦고 인상률도 비이성적이다.” ‘비이성적’은 이성에 바탕을 두지 아니하고 이성을 따르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제정신이 아닌’에 가깝다. ‘비이성적 행위[광기]’ “교사가 자신의 감정에 따라 학생을 때리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이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인상률도 비이성적이다’는 ‘인상률도 비합리적이다’로 바로잡는 게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