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노인들에 ‘다육이 화분’으로 웃음 꽃 드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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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물질보다도 마음이 중요할 때가 있다. 한 아파트 주민들이 지역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화분을 전달하고 있다. 끼니를 걱정할 어려운 이들에게 괜한 짓을 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화분을 받은 노인들은 다르게 답한다. 어려운 사람도 생명을 키우는 행복을 느끼고 이 과정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글=조한대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동아한가람아파트 봉사단원들. 왼쪽부터 소은영·송향란씨, 권용주 단장, 박갑순·이진수씨.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지역 독거 노인들에게 화분을 전달하고 있다. 풍납동 동아한가람아파트 주민들이 만든 ‘동아한가람아파트 봉사단’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추석을 앞둔 즈음이었다. 단원들은 서울시자원봉사센터에서 주관한 ‘마을(아파트)봉사단 우수프로그램’ 공모에 이 활동을 신청했다. 지난 8월에 선정돼 지원금 70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지역 노인들에게 사랑을 전달했다.

처음 화분을 나눠주자는 생각은 권용주(58) 봉사단장에서 나왔다. 권 단장은 예전부터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2005년 만들어진 이 아파트 봉사단뿐 아니라 송파구자원봉사센터 지역별 소모임인 ‘캠프’에서도 활동했다. 올해 봉사센터에서 ‘레인보우프로젝트’ 사업 공모를 했다.

그는 노인들에게 ‘다육이(다육식물) 화분’을 전달하는 사업을 생각해 냈다. 참여 대상자는 초·중·고교생이었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함께 지난 7월 동 주민센터를 찾은 노인들에게 무료로 화분을 전달했다. 이를 받아 든 노인들은 미소를 머금었다. 예상보다도 반응이 좋았다.

“독거 노인은 외롭잖아요. 말벗이 없으시니까요. 집을 찾아가 보면 삭막하고 어두운 분위기죠. 이분들껜 물질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위로해 줄 선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노인들이 생명을 키우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길 바랐다.

그가 화분에 심을 식물로 다육이를 고르는 데에도 노인들의 생활이 고려됐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 매일 물을 줘야 하는 식물을 키우긴 힘들잖아요. 반면 다육이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물을 줘도 잘 살죠. 키우기 쉬어서 택했죠.”

때마침 서울시자원봉사센터에서도 사업 공모를 했다. 단원들과 상의해 신청서를 냈다. 참여 대상도 학생에서 일반인으로 늘렸다. 단원들은 지난 8월 17일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나눔바자회를 열었다. 팔 물품은 아파트 주민들이 기증했다.

이 행사에서 생긴 수익금으로 주변을 돕기로 했다. 풍납1동 주민센터에 부탁해 지역 독거 노인 30명을 소개 받았다. 노인 한 명마다 컵 떡국 6개 들이 1상자와 단원들이 만든 다육이 화분을 전달했다. 단원들과 주민센터 직원들이 직접 노인들을 찾아다녔다.

아파트 주민들이 지역 독거 노인들에게 전달한 다육이(다육식물) 화분.

“자신이 기를 수 있는 화분을 선물하니 찾아 뵌 분마다 매우 좋아하셨어요.” 선물을 전달한 송향란(56)씨가 웃으며 말했다.

권 단장은 지난 16일엔 아파트 내 유치원을 찾았다. 원생 40여 명에게 봉사의 의미에 대해 알렸다. 다육이 화분을 함께 만들고 어린이들의 조부모나 이웃 주민들에게 선물하도록 했다. 20일엔 게시판을 보고 신청한 학생, 가족 봉사자 20여 명과 아파트 배트민턴장에서 화분을 만들었다. 만든 화분은 독거 노인들에게 보내질 예정이다. 앞으로도 매주 토요일이면 이 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어린이들에게 봉사의 참뜻을 알려주고, 봉사시간이 필요한 학생들에겐 보람된 일을 제공하고, 가족들에겐 서로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권 단장이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의지를 다졌다. “이제 시작일뿐이에요. 아파트 주민들이 만든 봉사단이지만 우리 단원들은 아파트만이 아닌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을 위해 꾸준히 봉사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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