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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뽑아도 후회할 것 같고 누구를 골라도 괜찮을 것도 같고 걱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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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햇빛은 반짝. 바람은 살랑. 빨래 말리기 정말 좋은 날씨다. 빨래건조대에 나란히 널어놓은 여름용 반팔 티셔츠와 겨울용 누빔 내복.

 정수라가 불렀던가.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 속에 이런 가사가 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이제 그 노랫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은 여름 지나 겨울이고 겨울 지나 여름 되는 2계절을 가진 나라로 바뀐 것 같다.

 여름 내내 입던 얇은 옷들을 아직 정리도 못했는데 괜히 마음만 바빠진다. 신문을 펼치다가 바닥으로 뚝 떨어진 전단. ‘XX백화점 유명 패딩점퍼 대제전’이란 글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침 외출용 겨울 패딩점퍼가 필요하던 참이라 백화점으로 갔다. 대제전이란 말답게 어마어마한 양의 패딩점퍼가 널려 있었다. ‘잔치잔치 패딩 잔치’ 열렸다. 두께도, 색도, 모양도, 온갖 종류의 패딩점퍼를 다 모아 놓았나 보다.

 처음 얼핏 봤을 때는 다 그럴듯하게 보이더니 하나하나 꼼꼼하게 뜯어보니 맘에 딱 드는 건 없다. 우선 대충 괜찮은 것 세 개를 골랐다. 두툼하게 누벼서 따뜻하게 보이는 것과, 오리털을 얇게 넣어서 날씬하게 보이는 것, 무채색 겨울에 환한 오렌지색 점퍼까지.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고민이다. 막상막하다. 고민 고민하다가 얇은 게 유행이라 하기에 얇은 것으로 골랐다. 찜찜했다. 패딩의 목적은 따뜻함인데 얇아서 추우면 어쩌나. 망설이다가 집에 와서 입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후회막심이다. 결국 다음 날 두툼한 것으로 바꿔왔다. 집에 와서 입어보니 이건 또 따뜻하긴 하지만 스타일이 영 아니다. 환한 오렌지색이 나을 걸 그랬나.

 꼭 필요했던 패딩점퍼. 결국 샀지만 그리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바로 딱 이거’ 할 만큼 맘에 드는 점퍼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한 품질의 점퍼 중 하나를 골라야 되는 선택은 내게 너무도 가혹했다. 어떤 걸 골랐더라도 후회는 했을 거다. 밝은 색깔의 두툼하진 않아도 따뜻하게 만든 패딩점퍼만 있었더라면 그 점퍼가 닳아 해질 때까지 행복하게 입었을 텐데 말이다. 만약 패딩점퍼가 한 종류라서 내게 선택권이 없었더라면 후회는 안 했으리라.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안 남았다. 큰일이다. 아직까지도 딱 맘에 드는 후보가 없으니. 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해서 점퍼 고르던 그때 내 심정이다. 사고 나서 후회되면 점퍼야 다시 바꾸면 그만이지만 대통령을 뽑고 나서 ‘맘이 바뀌었어요’ 하고 물러달랄 수도 없고. 차라리 후보가 한 명이었으면 맘은 더 편할 거 같다. 선택은 두고두고 책임감을 동반하지 않더냐.

 처음 얼핏 봤을 때는 다 그럴듯해 보였는데 하나하나 꼼꼼하게 들춰보니 ‘바로 딱 이 후보’가 없다. 누구를 선택해도 후회할 것 같고 누구를 뽑아도 괜찮을 것도 같고. 걱정이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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