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동성로 횡단보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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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구 동성로는 대구 한복판에 위치한 최대의 상업지역으로 ‘대구의 명동’으로 불린다. 대구역 앞 대우빌딩에서 중앙파출소까지 1㎞의 보행자 전용도로 구간이다. 동성로 주변에는 의류·화장품·구두·액세서리·식당·당구장·노래방·커피숍 등 4000여 개 점포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동성로에는 붉은색의 점포 블록이 깔려 있고 곳곳에 벤치도 설치돼 도심의 쉼터 역할을 한다. 동성로 중간쯤에 있는 야외공연장에서는 매일 각종 공연이 열려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은 하루 평균 40만∼50만 명. 하지만 동성로의 남북이 국채보상로(왕복 6차로)로 단절돼 있다. 시민과 관광객이 중앙지하상가의 계단을 거쳐 통행해 불만이 많다.

 앞으로 이런 불편이 사라진다. 대구시가 이곳 한일극장 앞 국채보상로에 횡단보도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지하상가를 찾는 사람을 위해 에스컬레이터 2기를 설치한다. 시는 최근 대구지방경찰청의 교통안전시설심의위원회에서 횡단보도 설치 승인을 받았으며 늦어도 내년 1월까지 설치작업을 마칠 방침이다.

 횡단보도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2007년이다. 대구시와 중구청이 동성로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기 위한 공공디자인 사업을 하면서다. 이는 도로에 벤치 등을 갖춘 소공원을 만들고 화강석으로 길바닥에 옛날 대구읍성(도심을 둘러싼 성)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해 관광자원으로 만들려는 사업이다. 성벽이 있던 자리를 나타내기 위해 한일극장 앞 국채보상로를 횡단보도로 연결하는 것을 검토했다.

 걸림돌은 지하상가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횡단보도가 생기면 사람들이 지하로 왕래하지 않아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거세게 반대했다. 대구장애인연맹 등 20여 개 시민단체도 대구보행권연대를 만들어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했다. 두 단체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5년간 해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지하상가 상인들이 양보안을 내놓았다. 보행 약자를 위해 횡단보도를 긋는 대신 상가를 찾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시에 요청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동성로 상인 모두 이를 환영했다. 육성완 대구장애인연맹 대표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차량 소통보다 보행자의 권리 보호에 무게를 둔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지하상가의 양보와 대구시의 노력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북쪽 동성로 지역 상인들도 상권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상권이 더 발달한 남쪽과 북쪽이 연결돼 더 많은 사람이 왕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시민단체와 함께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해 온 북쪽의 교동시장 상인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동성로상점가상인회 김운수 회장은 “횡단보도가 도심 상권 전체를 활기차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횡단보도를 독특한 형태로 디자인하는 등 대구의 명물로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최영호 대구시 교통정책과장은 “횡단보도 디자인에 옛 대구읍성 자리라는 의미를 담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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