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쇄신 목소리만 높고 내용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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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번 대선의 특징인 ‘안철수 현상’은 정치불신의 반영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정치쇄신에 대한 요구도 높다. 특히 안철수 후보가 야권후보 단일화의 조건으로 민주당의 정치쇄신을 요구하면서 야권의 정치쇄신 목소리가 최근 높아졌다. 22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쇄신안을 내놓은 데 이어 23일에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인하대 강연에서 쇄신안을 내놓았다.

 안 후보가 내놓은 쇄신안의 골자는 세 가지다. 국회의원 수 축소, 국고보조금 축고, 중앙당 폐지다. 오래 전부터 정치쇄신론이 나올 때면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아이디어들이다. 나름 의미도 있고, 필요한 대목도 있다. 그러나 안 후보의 주장은 이상적이지만 구체적이지 못하고,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회의원이 많다고 하면서 얼마나 줄이겠다는 기준이 없다. ‘많다’는 판단의 근거로 미국 하원의원과 비교했는데, 이는 맞지 않다. 미국의 경우 연방제라는 특성상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 없다. 대부분 선진국들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대비 의원 수는 적은 편이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은 하지 않고 온갖 특혜를 누림으로써 국민적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이다.

 국고보조금에 대해 안 후보는 “전두환 정권이 야당을 회유하기 위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단순하게 매도할 성질이 아니다. 정당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이다. 정당은 공적인 기능을 하기에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과거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폐단을 막는다는 공영화의 의미도 있다.

 중앙당에 대해서도 안 후보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도입됐다”며 “중앙당을 폐지해야 패거리 정치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단편적이다. 정당의 역사와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중앙당을 폐지할 경우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없다. 중앙당 폐지와 공천권 포기는 정치쇄신의 핵심 고리다. 누구나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정치권도 늘 다짐해 왔지만 지금까지 전혀 바뀌지 않아온 고질병이다. ‘문제’라는 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풀겠다’는 구체성이 없다면 구시대 정치권의 구호와 다를 바 없다.

 안 후보의 정치쇄신에는 특별히 더 기대가 높다. 그가 정치쇄신의 바람으로 탄생한 인물이고, 본인 역시 그런 역할을 자임해 왔고, 민주당에 단일화의 조건으로 쇄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안 후보의 정치쇄신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의심을 풀어줄 수 있는 보다 본격적인 공약이 나와야 한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쇄신안은 보다 소상하지만, 역시 지금까지 필요성은 지적되었지만 실천은 안 돼온 묵은 과제들이다. 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더 내놓아야 한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정치쇄신안은 가장 부실하다. 박근혜 후보가 정치쇄신특별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검찰 개혁과 같은 단편적인 쇄신안만 나왔다. 정당과 국회운영과 같은 본격적인 정치쇄신안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쇄신의 의지가 있다면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