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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광그물망·감지기 노루가 뛰어도 경보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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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05면

지난 15일 정희수 의원(새누리당)의 국회 사무실로 합동참모본부(합참) 대령 일행이 왔다. 국방위원회 소속인 정 의원에게 철책의 경계 과학화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선 경계 과학화를 둘러싼 압축 논란이 있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군 관계자가 전하는 대화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노크 귀순’에 1700억 들여 ‘스마트 철책’ 세운다는데…

합참 측=“과학화가 이뤄지면 첨단 장비로 낮엔 1~2㎞, 야간엔 200~400m를 경계할 수 있다. 감지율 99%다.”
의원 측=“멧돼지 같은 짐승들도 철책을 건드릴 텐데 어떻게 사람과 구별하나.”
합참=“짐승을 따로 구분하진 못한다. 그러나 감지되면 경계음이 울리고 통제실이 파악해 5분 대기조를 보낸다.”
의원= “북한군이 철책 200m 앞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와 대규모로 대기하고 있다가 1분 안에 기습하면 어쩌나. 5분 대기조도 손을 못 쓸 것이다.”
합참=“1분 안에는 못 온다.”
의원=“꼭 지금 해야 하나.”
합참=“GOP부대 근무 인력이 급격히 줄어든다. 과학화가 필요하다.”

군의 경계 과학화의 방침에 대해 신현돈 합참작전본부장은 19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1차로 2013년까지 3개 사단을 대상으로 완료하며 2014년까지 2~3차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은 2009년 GOP과학화 경계 시스템 1차 사업을 시작했다. 육군의 시험평가단은 전방 4개 사단 GP에 감시ㆍ감지ㆍ통제시스템을 1세트씩 설치해 2011~1212년 8개월간 3계절 시험평가를 마쳤다. 현재 사격 능력까지 갖춘 로봇을 경계 근무에 투입하는 계획은 없다. 시험엔 삼성 에스원과 SK C&C가 참여했다. 평가 결과는 방사청으로 넘어갔고 다음주 최종 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성능과 효과를 놓고 논란과 잡음이 일고 있다.

성능과 관련해 삼성 에스원 관계자는 “2011년 6개월 정도 GOP에서 시험 평가를 했다. 장비가 날씨나 바람에 영향을 받는다. 시스템만으로는 완벽한 경계가 어렵다”고 말했다. 무인 로봇 개발 회사인 도담시스템 관계자도 “우리 회사도 철책에 장치를 설치해 시험운영했다. 그런데 오경보가 많고 사다리를 타고 넘으면 막을 수 없다는 취약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육군이 1차 사업 이전인 2006년 6~9월에 연천ㆍ철원 철책을 맡은 5사단을 대상으로 했던 시범 사업 때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당시 육군은 40억7000만원 규모로 삼성 에스원과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 내용은 철책에 녹색 광그물을 씌우고, 그 위엔 200m 간격으로 저고도 카메라를 부착하며 낮에는 1~2㎞, 밤에는 200~400m를 자동 감지하는 것이다. 광그물에 침입자가 걸리면 신호가 울리고 카메라가 촬영해 영상을 지휘 통제실과 소초로 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했다.

방위사업청이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0월 시험평가에서 이 시스템은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군요구성능(ROC) 65개 항목 중 탐지율, 경보 신뢰성, 포착률 등 6개 항목이 기준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진 의원은 “오경보가 1일 수백~수천 건 발생했고 무선 감지기는 수중 물체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탐지율이 99%가 돼야 하는데 73%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이후 감사원은 감사를 통해 사업자 선정 과정의 비위를 밝혀냈고 해당 간부 징계를 요구했다. 이 간부는 전역 뒤 삼성 에스원에 입사했다. 그럼에도 시스템은 5사단에 납품됐다. 방사청 관계자는 “ROC엔 못 미치지만 5사단이 보완해 사용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부적합한 설비를 만든 삼성 에스원이 다시 1차 사업에 들어온 데 대해 진 의원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스마트 철책의 핵심 요소인 광그물망의 성능 문제도 거듭 지적되고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광섬유망을 비롯한 전체 시스템이 10년 전의 것”이라며 “북이 마음 먹으면 쉽게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동작 감지다. 진동 감지기엔 강한 바람이나 노루 같은 짐승의 동작이 끊임없이 포착된다. 이를 구별해줄 인공 지능이 필요하지만 현재 그런 인공지능은 없다. 따라서 사람이 일일이 판단해야 하므로 효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땅속을 뚫고 들어와도 발견하지 못한다. 진흙을 바르고 시속 1m로 움직이면 동작ㆍ열 감지기도 통과한다. 북한이 전자 펄스 무기인 EMP탄을 터트리면 순식간에 감지장비는 무력화된다.

육군 시험평가단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1차 사업 시험평가에서도 오작동과 고장은 끊이지 않았다. SK C&C 설비는 2012년 4월 5일~7월 11일 사이 283회 오경보가 발생했다. 월평균 최대 횟수인 10회를 넘는 34회였다. 삼성 에스원의 경우는 그보다 덜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방사청 측은 “최종적으론 성능 중심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사업비 대비 효율성 낮아 반대도 만만찮아
한편으론 ‘효율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합참이 정희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철책 스마트화를 하면 전방 13개 사단에서 1170명이 혜택을 본다. 경계병들의 근무 시간이 4시간 줄고 취침 시간은 1.5시간 늘어난다. 2010년 4월 GOP 근무를 경험한 상병ㆍ병장 7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근무피로 경감(76%), 취침시간 보장(49%), 체육활동 가능(58%) 효과가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 정 의원은 “17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데 비해 효율성이 크게 낮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철책부대 대대장 출신인 국민대 박휘락 초빙교수는 “현재 지속되는 전원 투입 형태의 A형 근무는 병사의 피로도를 너무 높인다. 지속 가능한 경계를 위해선 경계 과학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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