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포츠보기] IOC위원장 선거마저 페어플레이 정신 실종

중앙일보

입력

'스포츠맨십' 이란 운동선수들이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플레이한다는 전제 아래 생긴 말이다.

그러나 페어 플레이를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페어 플레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페어 플레이상' 이란 게 따로 있겠는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한국의 선거판.정치판이 한심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지난 16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8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선거를 가까이 지켜보니 그 역시 오십보 백보였다.

올림픽 정신은 깨끗하게 실력을 겨뤄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를 칭찬하는 것이다. IOC 위원장은 바로 그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올림픽이 상업화로 변질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지만 IOC 위원장을 뽑는 일만큼은 시정잡배와 달라야 한다.

김운용 대한체육회장이 꼭 위원장이 됐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김회장이 깨끗하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나타난 양상은 우리가 흔히 주위에서 보던 것과 매 한가지여서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21년간 장기 집권을 마치고 물러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은 IOC를 재정적으로 튼튼하게 만들고 영향력을 키웠다는 점에서 칭송받는다.

그러나 지나친 상업화와 거대화로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것과 함께 한때는 영구 집권을 기도했을 만큼 개인적 욕심과 독선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다. 물러나면서도 종신 명예위원장과 함께 사마란치 박물관의 유급 관장이 됐다. 또 아들인 사마란치 주니어를 IOC 위원으로 선출했다.

사마란치의 지지로 손쉽게 당선된 자크 로게 위원장은 천성적으로 조용한 사람이다. 맡겨진 일은 잘 하지만 적극성과 추진력이 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후광을 받는 위원장과 아들이 버티고 있는 한 사마란치의 수렴청정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마란치가 로게를 지지한 이유는 시간이 가면서 증명될 것이다.

사마란치가 로게를 당선시키려고 한 일은 다양하다. 김회장의 왕성한 활동을 의식, 윤리지침을 만들어 선거운동을 제한했다. 공식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고 해놓고서 자신은 로게를 지지, 김회장 반대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혔다.

더구나 선거 하루 전날인 15일 벌어진 행태는 흔히 보던 흑색선전 그대로였다. 3개월 전에 작성된 선거 공약, 그것도 비밀 유지를 위해 IOC 위원들에게만 발송한 내용을 투표 직전 마치 큰 잘못이 있는 것처럼 발표한다는 것은 일반인이라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긴 김회장도 선거 결과 발표장에 불참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은메달에 그쳤다고 선수가 경기 후 시상대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심판의 자질이나 판정 시비와는 또다른 페어 플레이의 원칙이다.

정녕 스포츠맨십은 영원한 숙제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