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행·대한생명 매각협상 갈수록 꼬여

중앙일보

입력

공적자금을 집어넣은 금융기관의 해외매각 협상이 갈수록 태산이다.

1998년 1년여의 협상 끝에 뉴브리지 캐피털에 판 제일은행에 대해 헐값 매각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은행에 투자하겠다고 나선 도이체방크의 자회사 DB캐피털 인베스트먼트도 1백20일간의 배타적 협상기간을 요구하고 나섰다. 2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한생명의 매각협상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 갈수록 힘들어지는 서울은행 매각=서울은행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DB캐피털 한 곳뿐이다. DB캐피털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매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18일 열리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선 유일하게 서울은행 인수의향서(LOI)를 낸 DB캐피털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정할 것인지를 두고 격론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울은행의 매각 주간사인 도이체방크의 자회사인 DB캐피털이 넉달 동안의 배타적 협상기간을 요구해와 매각 주체인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배타적 협상기간이 길면 길수록 매각 당사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제일은행을 미국계 펀드인 뉴브리지 캐피털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1년 동안의 배타적 협상기간을 뉴브리지측에 주는 바람에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DB캐피털이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단순한 투자 목적으로 50% 미만의 지분만 인수하겠다고 밝힌 점도 문제다.

지분만 매각할 경우 97년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내용을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일 수 있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요구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지분 일부만 매각될 경우 매수자가 경영권을 장악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은행에 대한 경영감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며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 자체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 은행의 투자효과를 선전하는 것이 되므로 은행 신인도가 높아질 수 있다" 고 주장했다.

◇ 갈 길 먼 대한생명 매각=정부는 지난 2월 대한생명의 경영정상화와 매각협상을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1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99년 말 2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뒤 이렇다 할 상황 변화없이 1년6개월을 보낸 셈이다. 99년 상반기에 인수 희망자가 나타났을 때 공적자금 투입없이 매각할 수 있었는데, 이미 2조원을 투입했고 추가로 1조5천억원을 더 집어넣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공적자금관리위는 지난 5월 매각 주간사로 외환은행과 메릴린치를 선정했으며 매각 협상이 구체화되기 전에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의사만 밝힌 채 자금 투입을 미루고 있다.

금융계에선 추가 투입분을 합쳐 3조5천억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들어갈 대한생명을 적정한 가격에 매각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금융기관 매각 왜 힘든가=지난 1분기 서울은행은 4백5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3월 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도 9.93%다. 6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덕분이지만 적어도 재무제표상으론 서울은행의 모양새가 좋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은행 매각이 계속 늦어지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계 은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싸늘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매각 협상에 간여했던 한 관계자는 "서울은행 매각 협상이 잘 안되는 것 자체가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우리 은행의 위상을 말하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상업은행의 입질이 없다는 점 자체가 '국내 은행의 실력' 을 나타내는 것이란 얘기다.

그는 또 제일은행 매각 과정에서 나타났던 여론의 정서적 판단이 서울은행의 매각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일은행에 1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집어넣고서 6천억원에 팔았는데, 제일은행이 공적자금 투입액수에 걸맞게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서울은행의 매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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