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고 있는 독일 닷컴의 직원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이맘때 웹디자인 대행사 픽셀파크는 철저한 新경제 기업이었다. 탄탄대로의 픽셀파크 직원들은 파울루스 네프 사장과 함께 자발적으로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

그들의 회사 주식은 6개월만에 10배나 올랐다. 그러다가 경기침체와 함께 적자가 늘고 네프가 1천5백명의 직원 중 2백명을 정리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직원들은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질렀다.

노동협의회라는 디지털 시대 이전 독일 산업의 유물을 꺼내들어 먼지를 턴 것이다. 노동협의회는 해고·고용과 회사정책 전반을 협상할 법적 권리를 지닌 대표를 뽑아 네프와 함께 해고조치의 정당성을 법정에서 가리기로 했다. 픽셀파크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노동협의회 위원장인 카차 카르거는 “사장과 스스럼없이 의견차를 조율하던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다”고 말했다.

독일의 상당수 선구적 인터넷 기업들에 정리해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불안해진 닷컴기업 근로자들은 구식의 노동협의회와 노조를 결성해 보호받으려 한다. 과학기술 중심 주식들이 상장된 노이어 마르크트의 상위 50개사 중 8개사를 포함해 20여개 첨단기업들이 노동협의회를 결성했다.

AOL과 아마존의 독일 법인은 지난해 닷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봉급과 정확한 휴식시간 책정 등 모든 것을 협상할 수 있는 노동협의회를 결성했다.

이 모든 것은 대체로 미국에서 들어온 닷컴 문화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의 고급인력 알선업체 라레 컴퍼니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구직자의 3분의 1은 스톡옵션보다 높은 보수를 받겠다고 응답했고 3분의 2는 노동협의회가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해주기를 원했다. 이 여론조사는 “구직자들은 이제 멋진 사무실과 스톡옵션 대신 안전성을 원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많은 신경제 기업들은 미숙한 창업단계야 오래 전 지났지만 아직 성숙한 내부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없다. 비텐-헤르데케大에서 창업정신을 가르치는 토르스텐 올데로크는 “픽셀파크와 AOL 같은 기업들은 이미 舊경제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직원들도 늙어간다.

하드웨어 제조사 회프트 & 베셀의 연구원 페터 슈미트는 요즘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채용된 다수 직원들이 가정을 갖고 있어 하루 15시간씩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철야근무를 하면 집사람과 싸움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독일의 대규모 노조들은 인터넷 문화에 동화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그것을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IG 메탈 노조는 프랑크푸르트의 해고 근로자 파티에서 조합원들을 모집하며, 스트레스에 지친 과학기술 연구원들을 e메일로 상담해주는 심리학자를 두고 있다. 서비스 부문 노조인 베르디는 신흥 미디어 기업들에 침투하기 위해 코넥스라는 기동반을 편성했다.

네프가 픽셀파크에서 정리해고를 발표하자 코넥스의 프로젝트 조정자 빌 바르츠는 픽셀파크 전직원 1천5백명에게 노동협의회 결성을 촉구하는 e메일을 보냈다. 그는 불만사항을 터놓을 수 있는 코넥스의 회원전용 게시판에 직원들을 링크시켰다. 그러나 아직은 노조에 가입한 픽셀 직원이 30∼40명밖에 안된다.

노조와 협의회는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손해를 본다. 올데로크는 “노동협의회는 불필요한 관료주의적 계급사회다. 그런 회사들은 유연성을 잃고 곧장 구경제로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소프트웨어 AG의 인력관리 책임자 라이너 프리츠는 7년 된 자사 노동협의회가 “직원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창조적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말했다. 정작 시장은 이와 무관하다. 뮌헨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노동협의회가 있든 없든 첨단기업들의 시가총액에는 차이가 없다. 근로자들이 발언권을 갖는 닷컴기업이 급증하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다행스런 일이다.

자료제공 : 뉴스위크 한국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