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불법 베팅자 단속, 경찰이 나설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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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
스포츠부문 기자

지난해 프로축구를 강타한 승부조작 스캔들의 후유증은 컸다. 전도유망한 선수와 실력 있는 지도자가 잇따라 목숨을 끊어 충격을 줬고, 불신 풍조가 축구계 전반을 지배했다. ‘정정당당함’이 사라진 프로축구를 팬들도 외면했다.

 모두가 한국 축구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 중인 이때 들려온 불법 베팅 재개 소식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중앙일보 10월 16일자 12면) ‘아마추어리그 경기장을 중심으로 불법 베팅 관련자들이 다시 출몰한다’는 제보가 잇따르자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후반기부터 주요 경기장에 경기국 직원을 보내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주말 휴식을 반납하고 전국 각지의 내셔널리그(2부리그)와 챌린저스리그(3부리그) 경기장을 두루 돌며 불법 베팅 관련자 색출 작업을 하고 있다. 최성익(29) 축구협회 경기국 대리는 “1년여 동안 관중석만 집중해 살피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법 베팅 관계자들이 좋아하는 위치와 행동 패턴을 파악하게 됐다”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사명감을 갖고 주말마다 전국을 누비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축구협회 직원들이 불법 베팅 관련자들을 현장에서 잡아도 이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 경찰에 인계해도 ‘증거 불충분’으로 훈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단속권을 가진 경찰이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불법 베팅 관련자로 의심되는 사람의 통화 내역을 감청해 증거를 확보하고, 상위 연결고리를 수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불법 베팅은 승부조작으로 이어지는 검은 커넥션의 출발점이다. 미리 싹을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검은 뿌리를 뻗어 우리 프로스포츠를 뒤흔들지 모른다. ‘근절’을 약속했던 정부의 실질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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