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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눈빛’ 거두고 유연하게 떠났던 사람도 다시 받아들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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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06면

박근혜 후보가 10일 경기도청에 있는 꿈나무 안심학교에서 어린이에게 글자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있다. [수원=뉴시스]

#장면1. 10일 오후 2시30분 경기도 수원의 경기도청.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김문수 경기지사와 마주 앉았다. 박 후보가 “평택에 100조원의 해외 투자를 유치하셨더라고요. 큰일 해주신 지사님, 자랑스럽습니다”라고 김 지사를 치켜세웠다. 김 지사는 3개월 전 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박 후보와 고 최태민 목사가 함께 앉아 있는 영상을 틀거나 “만사올통(만사가 올케로 통한다)”이라고 박 후보를 공격했었다.

#장면2. 11일 오전 10시20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박 후보가 선거대책위 인선을 발표한 뒤 질문을 받았다. 한 기자가 물었다. “누구와도 만난다고 했는데 김정은과도 만날 계획이 있습니까.” 사회를 보던 조윤선 대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박 후보는 웃음기 섞인 말투로 “갑자기 북한 이야기를 하셔서 방향을 바꿔야겠네요”라고 유연하게 받았다.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말을 중단하고 질문자를 빤히 쳐다봐 기자들이 “레이저 광선을 쏜다”고 표현하던 모습은 없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범하고 유연해졌다. 선대위 고위 관계자는 “우린 과거사 문제, 측근 비리, 캠프 내부 갈등 등 악재가 겹쳤는데 상대방은 컨벤션 효과를 누렸다. 위기감이 박 후보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변화는 지난달 24일 과거사 문제 사과에서 시작됐다. 웬만하면 번복하지 않는 게 박 후보다. 그래서 ‘고집 센 박근혜’로 통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는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던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한 측근은 “박 후보는 과거사 때문에 홍역을 치르면서 ‘박정희의 딸’이 아닌 ‘정치인 박근혜’로 거듭났다”고 주장했다.

사람을 쓰는 방식도 달라졌다. 떠나는 사람을 잡지도 않지만 한번 떠난 사람을 다시 쓰지도 않는 게 박근혜 스타일이다. 2인자 없이 혼자 결정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친박 퇴진론을 포함한 캠프 내부 갈등이 이어지자 자신을 떠났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를 총괄선대본부장에 임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국민대통합위원장과 공약위원장을 맡았다.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최경환 의원의 사퇴도 받아들였다. 대신 선대위엔 정몽준 전 대표 등 비박근혜계를 포진시키고,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동자 등을 포함시켰다.

단호한 면모도 보였다. 박 후보는 지역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 내분과 관련해 “내부 권력과 자리 싸움이 있는 것이 정치권의 특징”이라며 인적쇄신론을 ‘권력 투쟁’으로 일축했다. 한 당직자는 “박 후보가 평소 안 쓰던 권력 싸움이란 표현까지 쓴 걸 보고 서늘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감성에도 호소한다. 10일 박 후보가 수원과 인천을 찾을 땐 갈색 재킷 안에 빨강 셔츠를 입었다. 빨강이 포인트인 브로치를 달아 새누리당의 색상(빨간색)을 강조했다. 그런 뒤 당원들을 독려했다. 그는 “제가 정치에 처음 입문했던 달성군 선거(1998년)는 선거 마지막 날 있었던 여론조사까지 제가 두 자리 숫자로 지는 결과가 나왔다. 모두 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여론조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국민들이 조용히 지켜보고 계셨다”고 강조했다.

선대위 고위 관계자는 “박 후보는 천막당사 시절, 측근의 공천 탈락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위기에 강한 여자’라고 말했고, 이번에도 특유의 돌파력과 조정력으로 위기를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긴 어두운 터널을 헤치고 나오면서 자신감이 회복된 만큼 더 거침없는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 최고위원은 “최근 박 후보의 모습은 5년 전과 비교해도 권력의지가 강해졌다. 옆에서 보면 꼭 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고 평했다.

하지만 야권은 후보 단일화 논의로 관심을 끄는데 여권엔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패배주의가 여전하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김형준 명지대(정치학) 교수는 “박 후보 측은 ‘우리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신감이 약해 조직의 몰입도가 떨어진다”며 “결국 강한 조직과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선거 승리의 요체인 만큼 관심을 끌 수 있는 담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전문가인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도 “박 후보가 갈등을 수습하긴 했지만 12일 여론조사 지지율이 35.5%로 당 지지율 38.3%에도 미치지 못했다”며 “이재오 의원 등 비박근혜계 진영과 완전한 화합을 이루지 못한 데다 2040세대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게 지지율이 정체되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미지를 쇄신하고 스킨십을 강화하는 것도 박 후보에게 여전히 남은 숙제다. 지난달 24일 부산 선대위 출정식에서 학생들이 ‘말춤’을 추자고 하자 수줍어하면서도 양손을 포개는 포즈를 취하기는 했다. 하지만 10일 수원에서 20, 30대 당원들이 “젊음의 색을 입히자는 취지에서 젊은 여대생들에게 인기 많은 딸기우유 립스틱을 준비했다”며 립스틱을 선물하자 “참 센스 있는 선물”이라면서도 정작 바르진 않았다. 한 당협위원장은 “박 후보의 이미지를 젊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많은데 박 후보는 외모를 바꾸는 걸 꺼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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