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대통령을 통해 본 한국 경제발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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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통령의 경제학
이장규 지음, 기파랑
528쪽, 2만6000원

경제학은 어렵다는 게 통념이다. 경제사도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숫자가 많고 용어가 딱딱하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 사람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생각하곤 했다. 역사도 인물사가 재미있듯 경제사도 그럴 것 같았다.

 인물로 경제사를 쓴다면 역시 대통령이 제격이다. 경제 주체는 기업, 노동자, 소비자 등 여럿이지만 우리의 현대경제사는 누가 뭐래도 정부 주도 개발경제사였기 때문.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경제관과 정책을 살펴보면 한국 경제발전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싶었다.

 역시 그랬다. 이 책은 대통령을 통해본 경제발전사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게 됐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인물 경제사인만큼 재미있게 읽힌다. 이색적인 내용도 많다. 예컨대 대통령이 영어를 잘 하는 게 나라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다른 책과 학자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능수능란한 영어를 구사했기에 대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경제정책에 대한 이해도 풍부하게 해준다. 숫자에 사람을 넣었으니 그럴 수밖에.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인색하다. 통계로만 보면 그렇다. 엄청난 특혜 지원에 과잉투자, 이 때문에 막대한 부실도 발생했다.

 하지만 여기에 지은이는 박 대통령이란 사람을 집어 넣었다.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으로 놀란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무기를 만들기 위한 군수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그 방안으로 중화학공업 정책이 대두했다는 것이다. 경제정책이 아니라 안보정책이었기에 특혜지원과 과잉투자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듯, 다음 대통령이 누가 돼야 할지에 대한 입장도 흥미롭다. 구조적 저성장이 분명한 만큼 차기 대통령은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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