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배 보내 이젠 폐업 … 차라리 이민 가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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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공들여 만든 선박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고 이제 조선소 문을 닫습니다. 내 손으로 또 배를 지을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5일 경남 통영시 봉평동 21세기조선에서 열린 선박인도식을 지켜본 이장호(50·사진) 생산본부장의 말이다. 인도식의 주인공이던 3만4000t급 벌크선은 우크라이나 선주사에 무사히 인도됐다. 그리고 회사는 곧 폐업한다. 채권단이 올해 말까지였던 워크아웃을 조기 종료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호황기 때 1500명에 달하던 직원들은 차례로 나갔고, 이 배를 위해 남아 있던 150여 명의 직원도 곧 퇴사할 예정이다. 이 본부장은 “워크아웃이 진행되면서 눈물을 삼키며 내 식구들 내보냈는데 결국 회사가 문을 닫게 됐다”며 한숨 쉬었다.

 거제도 출신인 이 본부장은 33년간 남해 일대 조선소에서 근무한 ‘조선통’이다. 1980년 대우조선에 고졸 공채로 입사해 신아sb를 거쳐 2003년 21세기조선으로 이직했다. 당시만 해도 조선업종은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남해안 일대 선박 블록 제조업체와 수리조선소 등이 벌크선 제조 같은 신조선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21세기조선도 수리조선소에서 신조선회사로 전환했다. 이 본부장은 “세계 물동량이 늘어나 9900㎡에 불과한 이 조선소에서 한 해 16척의 배를 만들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뒤늦게 출발했지만 21세기조선은 2007년 세계 조선소 50위(선박 건조량 기준) 안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연이은 세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키코(KIKO·환헤지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 막대한 손실을 보고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 본부장이 처음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조선소에선 화학제품 운반선(2만8000t급)을 처음으로 만들고 있었다. 설계부터 배 만드는 과정까지 시행착오가 많아 수주금액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다. 이 본부장은 “한국의 조선소가 그런 과정을 거치며 기술력을 쌓아갔고 나도 함께 성장했다”며 “33년간 수백 척의 배를 만들면서, 만든 배가 선주한테 인도될 때 자식 결혼시키는 아버지의 심정을 매 순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런 자부심으로 그는 아들에게도 조선소 근무를 권했다. 현재 큰아들이 통영의 성동조선해양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소 조선소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요즘, 이 본부장은 “ 중소조선사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배신감에 이민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기술력 있는 중소조선사들이 다 망하고 대형 조선소만 남게 되면 결국 중국 쪽에 중소 단위 선박 수주를 다 뺏기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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