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빅4' 장악 다른 영화들 설자리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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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회의의 배급개선위원회는 매주 월요일 전주 주말 박스오피스 상위 10편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번 주는 7위까지만 나왔다. 서울시내 개봉관 2백여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된 영화가 모두 일곱 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번주 서울 관객의 영화 선택권은 단 일곱 편으로 제한돼 있었다는 얘기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툼레이더' '미이라2' '신라의 달밤' '진주만' 등 네 편의 스크린 점유율이 95%를 넘었다. 한마디로 '네 편의 천국' 이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네 편의 관객 점유율이 98%정도를 차지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 23일 개봉한,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테일러 오브 파나마' 와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오! 그레이스' 는 1주일만에 막을 내려야 했고,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간장선생' 도 2주를 넘기지 못했다.

대작들 틈에 낀 로버트 드 니로의 '15분' 이나 류더화(劉德華) 의 '파이터 블루' 도 상영관이 한개에 불과했다.

이는 여름철을 맞아 할리우드 대작들을 놓고 직배사와 국내 메이저 배급사들이 치열한 스크린 확보 경쟁을 벌이는 탓에 '작은 영화' 의 배급을 맡은 회사들은 극장을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심지어 '다양한 영화를 보여준다' 는 복합상영관에서도 몇 작품을 중복 상영할 정도다.

관객 선택권이 외면 당하고 작고 다양한 영화가 설 자리를 잃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일이다.

영화계에선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다양성을 관리하는 쿼터까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는 자조의 말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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