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 역사 제대로 안 가르친 일본 … 극우 선동 그대로 믿어버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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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와카마쓰 고지 감독.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는 일본 지도층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송봉근 기자]

영화감독 와카마쓰 고지(若松孝二·76). 일본 독립영화계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다. 무엇보다 개인사가 파란만장하다. 궁벽한 시골 출신인 그는 고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도쿄로 상경했다. 20대 초반 먹고 살기 위해 야쿠자 일까지 해야 했다. 반년 간의 수감시절 당했던 치욕에 대한 분노를 푸는 방법으로 영화를 택했다.

 그는 딱히 영화를 배운 적이 없지만 사회에 대한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 일본의 치부를 고발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적군파(1970년대 활동한 일본의 좌파무장단체) 이야기를 다룬 ‘실록 연합적군’(2008·베를린영화제 최우수아시아영화상), 전쟁에서 사지가 절단된 채 고향에 돌아온 일본군 전쟁영웅의 고통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캐터필러’(2010·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에서 일본 사회의 그늘을 들춰냈다. 일본 영화계의 ‘반골’ 내지 ‘싸움꾼’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가 4일 개막한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50년간 영화 100여 편을 만든 공적 덕분이다. ‘11·25 자결의 날’ ‘해연호텔 블루’ ‘천년의 유락’ 등 그가 올해 찍은 작품 3편도 공개됐다. 올 칸영화제에서도 주목받은 ‘11·25 자결의 날’은 강성한 자위대를 부르짖으며 1970년 자결한 일본 유명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마지막 순간을 그렸다. 70대 중반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그를 5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만났다.

 -왜 미시마 유키오인가. 적군파 영화를 만든 당신이기에 더 놀랍다.

 “적군파와 미시마는 사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사회와 국가를 바꾸려 일어섰다가 좌절했다는 점에선 똑같다. 사익보다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난 좌도, 우도 아니다.”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꾸짖음으로 들린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와 국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 반(反) 원전데모만 해도 전부 노인들 뿐이다. 젊은이들은 게임만 하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젊은이들은 세상의 모순에 저항하고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일본 영화계에 불만이 큰 듯하다.

 “개·고양이 영화나 만화 원작의 영화가 넘쳐난다. 돈 되는 영화만 만들려 한다. 현실에 맞서 싸울, 근성 있는 감독도 별로 없다. 문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다.”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국민과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가는 일본에 한 명도 없다. 선거만 의식하기 때문에 독도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가 일본땅이라 외친다. 침략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믿어버린다. 한국과 중국이 왜 반발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정치도, 교육도 잘못됐다.”

 -에로영화부터 정치영화까지 폭이 넓다.

 “20대 초반 구치소에서 나온 직후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소설을 쓰다가 영화계에 입문했다. 처음부터 내 생각대로 영화를 만들 순 없었다. 배급사가 원하는, 에로틱한 영화를 찍으면서도 내 나름의 철학을 넣으려 했다.”

 -고령에도 쉬지 않고 작품을 내고 있다.

 “‘캐터필러’가 히트한 덕분에 올해 세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여기저기 수술 받은 데가 많아 힘들지만, 감독 의자에 앉으면 기운이 펄펄 난다. 작품마다 ‘이젠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금세 또 찍고 싶어진다. 영화는 내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약이다.”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나.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영화다. 진실을 감추려고만 하는 그들에 대한 분노를 담으려 한다. 오키나와 위안부에 대한 작품도 만들 생각이다.”

부산=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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