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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해물들 새 얼굴로 다가오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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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26면

저자: 안휴/출판사: 중앙m&b/가격: 1만5000원

안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엘 불리 때문이었다. 몇 년치 예약이 이미 잡혀 있다고 하는 세계 최고의 식당. 페란 아드리아라는 최고의 요리사가 직접 운영하는 곳. 요리 관련 기사를 쓰게 되면서 이 이름들을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된 무식한 기자에게 엘 불리 탐방기가 실려 있던 그의 신간 『세계의 별들을 맛보다』(2009)를 읽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안휴의 미식 기행-바다와 섬의 만찬』

그는 어떻게 전 세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섭렵할 수 있었을까. 알고 보니 그는 일찌감치 넓은 세상에 눈을 뜬 ‘원조 유목민’이었다. 아니, 그 전에 어머니가 부엌을 비우면 요리를 시작하던 일곱 살짜리 꼬마 요리사가 있었다. 그는 1980년대에 미국으로 가서 10대를 보내고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술·음식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돌아다니던 그는 영화 제작보다 맛있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다. 그래서 배낭여행을 갔다가 와인 강의를 듣고, 원조 테킬라를 마시기 위해 멕시코 현지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탈리아의 한 시골에서는 100년 묵은 식초를 맛보고 혼자 짜릿해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눈길이 이번에 머무른 곳은 우리 땅의 끝과 섬이다. 부산, 통영, 울릉도, 진도, 완도, 흑산도 등 대한민국 지도의 가장자리에서 그는 잊고 지내던 먹거리의 향수를 되찾았다.『안휴의 미식 기행-바다와 섬의 만찬』(중앙m&b)은 그렇게 시작된 책이다. 그가 소개하는 메뉴는 화려하다. 울릉도 바닷속에서 바로 건져올린 자연산 전복·뿔소라·홍합·석화를 층층이 쌓아올린 해계탕, 멸치튀김·멸치회·멸치밥·멸치전·멸치시래깃국으로 이어지는 멸치 풀코스 요리, 여수의 여름을 장식한 야들야들한 참장어 샤브샤브, 겨울이면 미역을 먹고 자라 바다의 풍미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완도의 전복 등 우리가 알고 있는 해물들이 새로운 얼굴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어르신이 계곡 비탈길에서 대뜸 멈추더니 한 손으로 나무를 잡고 손을 뻗쳐 무언가를 뽑아내 향을 맡아보라며 내 앞으로 던져준다. 갓 캐낸 정체 모를 그것은 신비롭고 또 묘한 아로마를 풍겼다. 3cm 정도 됨직한 크기에, 연한 연두색의 뿌리를 가진 이 식물은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야생 와사비였다.”

“샛노랗고 보드라운 속살, 은은하고 독특한 향, 술술 넘어가는 맛에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인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가 멍게철이다. 이 제철 멍게를 손질해 양념하고, 숙성시킨 후 그대로 냉동해서 1년 동안 사용한다. 뜨거운 밥에 김가루 듬뿍,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비벼 먹는 그 맛에 반해 나는 통영으로 향한다.”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술이다. 홍주의 명인 허화자 할머니와 나눈 대화, 평범한 섬마을 민박집에서 느꼈던 노부부의 걸쭉한 막걸리 등 전통주와 관련된 구수한 이야기들은 공연히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는 이 책을 내면서 “오랫동안 해외에서 거주했기에 그동안 비운 시간의 공백을 채우는 심정으로 전국의 음식과 거기에 얽힌 음식문화로 정신적 허기를 채웠다”고 말한다. 아마 편안하게 쉰다는 이름 복 덕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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