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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쳐도 대사·국장 되는 외교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010년 9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비리가 드러났을 때 행정자치부는 외교부 인사기획관이던 A씨와 인사운영팀장 B씨에 대해 특혜 인사의 책임을 물어 각각 정직과 감봉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그 뒤 승진해 현재 외교부에서 국장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엔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 협정 문안의 한글본의 번역 오류가 드러나 교섭대표였던 C씨와 협상총괄과장이 각각 견책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역시 그 뒤 승진해 각각 유럽 지역의 대사와 참사관으로 발령받아 일하고 있다.

 이처럼 스캔들·비리·업무태만 등에 연루된 외교관 가운데 잠시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나중에 구제되거나 영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5일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안홍준 위원장) 국감에서는 이 같은 외교부의 인사 난맥상이 집중 질타를 받았다.

 이날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공개한 ‘2011년 이후 외교부 주요 징계 현황’에 따르면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채 비리 당시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이던 D씨는 견책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동남아 주요국 대사로 영전됐다. 당시 특채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감봉 처분을 받았던 E씨도 현재 아프리카의 모 주재국 대사를 맡고 있다.

 해외 공관에서 고질적으로 일어나는 비자발급 비리 관련자들도 적발될 때만 가벼운 처벌을 받고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대사관의 비자발급 비리 사건으로 견책 처분을 받았던 부총영사 F씨는 현재 귀국해 외교부 본부에서 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함께 주의를 받았던 영사 G씨는 동남아 모 대사관에서 영사 업무를 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은 “비자발급 비리 관련자 5명 중 3명은 경징계만 받았고, 나머지 2명은 징계도 아닌 불문경고에 그쳤다”며 “본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외공관으로 나가면 그만이고, 해외공관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공관으로 옮기면 끝이라는 인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병석 의원도 “2008년 이후 273명의 외교관이 부당한 업무 처리와 개인비리 등으로 징계를 받아 전체 외교부 직원(2229명)의 8명 중 1명꼴(12%)로 징계를 받았다”며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사실을 인정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 전날 외교관 자녀 중 영주권 등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에 대해 “해당 외교관의 경우 진급하기 어려울 것이고 공관장으로 나가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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