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칼럼

아픔, 아픔, 아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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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아프지 않은 세대가 없다. 젊은이부터 늙은이까지 온통 아프다는 소리뿐이다. 어느 이동통신 회사의 TV광고 ‘빠름 빠름 빠름…’이 ‘아픔 아픔 아픔…’으로 바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나 튼튼하다, 잘나간다, 돈 많이 번다는 소리 하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건강하고 잘나가고 돈 많이 버는 사람도 분명 많을 텐데 말이다. 이 사회의 강자들은 침묵 또는 눈치보기 모드로 전환한 지 오래이니 상대적으로 약자들의 목소리만 부각되는 것일까. 우리가 언제부터 죽는 소리만 하고 살아 왔던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했다. 그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시집 코너에 오래 머물렀다. 여기서도 대세는 ‘아픔’이었다. 진열돼 있는 시집·에세이집을 대충 제목만 메모해 본 게 이렇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힘들 땐 그냥 울어』『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누구도 아프지 말아라』『울고 싶어도 내 인생이니까』『마음 아프지 마』『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지친 목요일, 속마음을 꺼내 읽다』『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너무 쉬워서 놓쳐버린 것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버린 것들』『천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이 중 몇 권을 샀다. 사무실로 돌아와 요새 한창 인기라는, 출간 3개월 만에 3만 부 넘게 팔렸다는 김재진 시인의 시집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를 펼쳤다. 김 시인에게 미안하고 또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털어놓는 말이지만, 시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자꾸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토닥토닥’이라는 시의 전문.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 혼자 있어도 괜찮다. /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쉬운 언어로 다정다감하게 속삭이듯 위로하는 시다. 아, 그래서 이 시집을 많이들 찾는구나, 요새는 온통 아픈 사람 천지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50대 중반인 나의 감성이 메마른 탓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일 게다. 그러나 10년 전 300만 부를 돌파한 초(超)베스트셀러 시집 ‘홀로서기’ 시리즈를 기억해보자. ‘어디엔가 있을 / 나의 한 쪽을 위해 /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 태어나면서 이미 /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 이제는 그를 / 만나고 싶다.’ 분명 지금보다는 감성이 촉촉했을 텐데도, 당시 나는 이런 구절에서 거의 자지러지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이상한 건가?

 2012년판 아픔·치유·위로 증후군에 불을 댕긴 책은 아무래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화차’의 변영주 감독과 김난도 교수가 최근 트위터상에서 벌인 설전이 꽤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변 감독이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개쓰레기라는 생각을 한다”고 비판하자 김 교수가 “아무리 유감이 많더라도 한 인간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항의한 것이다(본지 10월 5일자 29면).

설전은 변 감독이 보도 경위를 해명하고 “의도가 무엇이건 제 잘못입니다. 경솔했습니다”라고 사과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왠지 아쉽다. 그 좋다는 싸움 구경을 더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아픔 증후군의 구체적인 증상과 원인, 해법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할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다.

가령 변 감독이 인터뷰에서 기성세대를 향해 “지들이 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책)이라고 써서 그것을 돈을 받아먹나?”라고 일갈한 대목과 김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행한 노력의 첫걸음은 그들(청춘)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은 얼마든지 더 진전시킬 여지가 큰 담론을 품고 있다. 사회·국가의 책임을 우선시하는 진보 입장과 개인에 더 주목하는 보수 입장이 맞붙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 예의범절 차원에서 흐지부지 봉합돼 버렸다.

 그럼 너는 어떤 생각이냐고? 아픔 증후군이 한낱 ‘네 탓’ 병(病)으로 고착된다면 큰 문제라고 본다. 자기연민, 응석, 책임회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한때 대한민국을 떠받쳤던 ‘근면·자조·협동’을 되살리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이어받든 간에, 여하간 퇴영적인 아프다 타령으론 안 된다. 특히 기성세대들까지 아프다고 징징대는 풍경은 더욱 꼴 보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