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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10시간] 차인표 '성실한 배우' 자리굳혀

중앙일보

입력

23일 오후 1시30분 여의도 MBC에서 만난 탤런트 차인표(34) 는 주말극 '그 여자네 집' 의 세트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데 극중 그의 장인인 박근형씨가 분장실로 들어섰다. 일주일여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박씨는 보행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대사를 외우던 차인표가 황급히 일어나 소파를 밀어주며 박근형씨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배려는 촬영 내내 이어졌다.

그가 촬영을 하러 간 사이 박근형씨는 "처음에는 냉정해보여 건방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함께 연기를 하다보니 마음씀씀이가 정말 놀라울 정도야. 아랫사람 잘 챙기고 윗사람에게 깍듯하게 대하니 누가 차인표를 싫어할 수 있겠나"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간미 넘치는 차인표' 라는 세간의 소문을 입증하는 장면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팬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금세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고, 다른 탤런트에 관한 프로그램을 찍던 제작진이 "몇 마디 멘트를 해달라" 며 네 팀이나 찾아와도 친절히 응대했다.

'데뷔하자 스타덤' 족쇄로

촬영 중간의 휴식 시간은 공장으로 치면 '닦고, 기름치고, 조이다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 과 다를 바 없기에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는 연예인이라 해도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오후 6시쯤 차인표는 자신이 나오는 장면의 촬영을 끝냈다. "평소 같았으면 후배인 서진, 태영과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했을텐데" 라던 그는 경기도 이천에서 있을 팬클럽 행사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7인승 밴에 급히 몸을 실었다.

양재동 톨게이트에 이르자 주말 고속도로는 나들이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느릿느릿한 차량 행렬 속에서 그와의 대화는 과거로 돌아갔다

1994년 트렌디 드라마 '사랑을 그대품안에' 의 강풍호 역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부유층 집안 아들로 색소폰을 불던 그의 극중 이미지는 오렌지족이란 신조어가 일상어가 된 당시의 시대정서와 맞아 떨어졌다.

이젠 '성실한 배우' 자리굳혀

"그때는 연기도 못했죠. 한국 사회에서 스물일곱살 남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던 거에요. 그 이미지로 얻어진 이득을 즐겼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딨겠어요. 즐긴만큼 뱉어내야 했지요. 이후엔 어떤 역을 해도 '연기 못하는 놈' 이란 인상이 사람들 마음에 각인된 거죠. 그 때 만들어진 이미지로 유명해졌지만 그게 결국은 족쇄로 작용했어요. "

그 후 마음고생이 심했다. 차인표는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게 사람들의 심리 아닌가. 이혼 경력도 폭로됐고 군대도 가야했다.

그리고 7년 후인 지금 '그 여자네 집' 의 태주 역으로 그는 '반짝스타' 가 아닌, 직업인으로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극중 태주는 수더분하고 털털하며 아내를 아끼는 인물이지만 가끔 자기도 모르게 결혼 생활에 짜증내고 힘들어하는, 그래서 연기력이 더욱 요구되는 캐릭터다.

"극중의 영욱(김남주) 같은 여자와는 못살 것 같아요. 전 보수적이거든요. 결혼은 상대방에 대한 끝없는 이해와 배려가 중요하죠. 어느 시점에선 타협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영욱이도 잘 하기는 하지만 이상적이진 않아요. "

그러면서 그는 "아내 신애라는 참 영리하고 완벽하다" 고 설명했다. 전세로 살던 차인표 부부는 최근 결혼 6년 2개월만에 첫 집을 장만했다. 편리함이나 안전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아파트를 마다하고 조그만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산 이유는 아들 정민이 뛰어놀며 조금이나마 시멘트 숲에서 벗어나길 바랐기 때문이란다.

그의 연기변신을 가능하게 했던 최고의 공로자는 '그 여자네 집' 의 작가 김정수씨다. 김씨가 쓴 '그대 그리고 나' (97년) 에서 그는 일확천금을 노리지만 마음만은 착한 박영규 역을 맡아 연기자의 길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11월엔 영화에 재도전

이제 그의 꿈은 영화로 향하고 있다. 육상효 감독이 연출하는 로맨틱 코미디 '아이언 팜' 을 오는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찍기로 했다. 상대역은 영화배우 김윤진.

그가 출연했던 '닥터K' '짱' 등은 흥행에 참패했다. 영화계에선 그가 '친구'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히트작의 출연 제의를 거절한 사실을 두고 영화와는 인연이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게 제일 중요하다" 며 맞섰다.

그는 자신의 무기를 "성실성" 으로 꼽았고, 주위 사람들도 그를 "성실한 청년, 인간미 넘치는 사람" 이라고 평한다.

중요한 건 그가 몸의 기틀뿐만 아니라 마음의 기틀도 잡혀 있는 탤런트라는 점이다. 주말 고속도로를 느릿느릿 가던 차는 목적지인 경기도 이천에 도착했다. 어느새 밤이 이슥해 있었다.

대만서 팬클럽 50여명 방한

중화권내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를 뜻하는 '한류(韓流) ' . 이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23일 대만에서 차인표의 팬 50여명이 찾아왔다.

팬클럽 이름은 '표동인심(表動仁心) ' . '차인표가 마음을 움직였다' 는 뜻이다. 이들은 경기도 이천에서 차인표의 한국 팬클럽 '인표사랑' 과 함께 행사를 가졌다.

드라마 촬영지 방문 등 관광 목적으로 대만 팬들이 찾아온 일은 더러 있었지만 공동 팬클럽 행사를 연 것은 이례적이다. 행사는 차인표와 함께 불꽃놀이, 장기자랑, 양국 팬클럽의 선물 교환 등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차인표는 "지난 3월 드라마 '불꽃' 을 홍보하기 위해 대만에 갔었는데 공항으로 배웅나온 팬클럽 회장 아이리스 장이 회원들을 데리고 한국에 와도 되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한국측 팬클럽 회장인 장희안씨에게 얘기했어요. 양국의 팬클럽이 서로 e-메일로 일정을 상의해가며 이번 행사를 만든 거예요" 라고 설명했다.

방문한 대만 팬들의 평균 나이는 35세. 59세 중년부인과 그 딸(39) 이 함께 왔으니, 대만의 차인표 팬들은 대개 직장인과 주부다.

대만 팬클럽 회장 아이리스 장은 "원래 1백50명이 올 예정이었으나 항공편이 여의치 않아 최소 인원이 왔지만 여기 온 사람들은 오늘을 결코 잊지 못할 것" 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차인표는 "양국간엔 외교 단절로 국적기가 뜨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 행사와 관련해 정부 여러 부처에 문의를 했지만 다들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만 답했다" 며 "문화수출이라고 외치기 전에 정말 문화계가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조금만 더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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