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프로의 자존심이 초래한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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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보(114~131)=바둑은 ‘종횡의 도’라고도 불린다. 바둑이 패권을 움켜쥐고자 천하를 종횡하던 전국시대의 사상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제아무리 뛰어난 고수도 부질없는 집착에 빠져들어 대세를 망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진다. 전보 백△는 집착의 산물이었고 그로 인해 백은 우상을 돌파당하는 아픔을 겪고 말았다. 114, 116으로 두 눈을 내고 살았으나 우선 모습이 너무 궁하다. 게다가 117의 준엄한 육박을 당하며 바둑의 주도권이 순식간에 흑에 넘어가고 있다. 한 판의 바둑이든 인생이든 중대한 고비에서의 실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파장을 만들어낸다.

 백△로는 차라리 우상 백1에 두는 것이 나았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흑2 한 방은 매우 아프다. 그러나 그건 ‘프로의 자존심’이 아픈 것이지 형세엔 별 타격을 주지는 못한다. 구리 9단은 내친김에 118, 120으로 두 점을 잡았으나 121과 교환되고 보니 아무 이득이 없다. 좌상 귀는 본시 백의 소유였다. 하나 지금 집을 세어보면 백 집은 기껏해야 10집이고 흑 집은 상변을 포함해 최소한 15집이다.

여기에 우상 쪽 득실까지 계산하면 그동안 백이 얼마나 정처 없이 헤맸는지 알 수 있다. 가볍게 시작된 ‘부자 몸조심’의 심리가 결국 백을 망친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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