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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 절·교회·성당에 끊이지 않는 기부 발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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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울산 남구청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동전·지폐로 뒤섞인 100만원 안팎의 기부금을 사회복지남구후원회에 보낸다.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지금까지 3600여만원을 보냈다. 12월부터 사회복지 혜택에서 제외된 소외계층 돕기 자금으로 쓰일 기부금이다. 이는 모두 울산 선암호수공원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에서 모은 것이다.

 선암호수공원에는 초미니 종교시설인 ‘안민사’와 ‘호수교회’가 나란히 서 있다. 10여m 간격을 두고 천주교 시설인 ‘성베드로 기도방’도 있다. 각각 한 평(3.3㎡) 남짓한 면적에 높이 1.8m, 너비 1.2~1.4m로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장난감 같은 시설이다. 하지만 안민사는 울산시불교종단연합회로부터, 호수교회는 울산기독교연합회로부터 각각 인증을 받은 정식 사찰과 교회다.

27일 울산시 남구 달동 선암호수공원 안에 세워진 미니 사찰 안민사에서 시민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위쪽). 아래 사진은 사찰 옆에 있는 호수교회(왼쪽)와 성베드로 기도방(오른쪽) 모습. 높이 1.8m, 너비 1.2~1.4m 크기로 모두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시설이다. 송봉근 기자, [울산 남구청]

 남구청은 지난해 9월 6억원을 들여 볼거리용으로 이 시설들을 만들었다. 처음엔 공원을 거닐던 이용객들이 신기하다며 한 번씩 들여다보거나 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기부 명소’가 됐다. 평일 1500명, 주말에는 2만여 명씩 찾아오는 입장객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라며 시줏돈과 헌금을 내고 간다.

 이곳에 모이는 기부금은 대부분 100원짜리와 500원짜리 동전, 1000원짜리 지폐다. 이달 첫째 주 남구청이 모은 80여만원의 기부금 중 30여만원은 동전이었다. 1만원짜리는 2~3장뿐이었고 나머지는 1000원짜리였다. 불우이웃을 돕겠다며 유치원 아이들이 낸 동전부터 공원을 둘러보다 슬며시 1000원, 2000원을 내고 가는 시민들의 작은 온정이다. 안민사 내에는 ‘기부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됩니다’는 문구까지 씌어 있다.

  남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수험생 손자를 둔 할머니가 5만원과 편지를 담은 흰색 봉투를 안민사에 두고 간 게 기부의 시발이 됐다. 이 할머니는 ‘이곳에서 공양을 한 뒤 손자가 좋은 성적으로 울산과학고에 입학하게 됐다. 감사하다’고 편지에 썼다. 그러자 미니 종교시설에서 소원을 빌면 행운을 얻는다는 입소문이 났다. 정성문(42) 남구청 공원녹지계 주무관은 “복을 빌고 시주와 헌금을 놓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불우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기부를 하고 간다”고 말했다. 남구청은 기부금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가동되는 폐쇄회로TV(CCTV) 7대를 설치했다.

 26일 안민사에서 공양을 하고 나온 김경희(29·대구시 달서구)씨는 “행운을 빌러 왔다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인다는 안내문을 보고 1만원을 시주했다”고 말했다. 돈 대신 음식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 쌀과 떡, 과일, 사탕, 에너지 음료 등 매일 10명 이상이 넉넉히 나눠먹고 남을 음식이 모이면 안민사의 한 보살이 인근 저소득층들에 나눠준다.

 남구청은 초미니 종교시설을 기네스북에 올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해외 관광객뿐 아니라 외국 종교인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각오다. 김두겸(54) 남구청장은 “호수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로 알려진 캐나다의 ‘리빙사이드채펄’보다 1.3㎡ 작고, 안민사의 규모도 호수교회와 비슷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사찰·교회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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