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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스타열전 (63) - 에드가 마르티네스

중앙일보

입력

얼마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칼 립켄 주니어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임을 밝혔다.

많은 팬들은 아쉬움 속에서도 그의 결정을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여기고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노장 에드가 마르티네스도 얼마 후면 립켄과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38세인 그에게 은퇴의 징후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마르티네스는 1963년 뉴욕에서 출생했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는 푸에르토리코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 모두를 '할아버지의 땅' 푸에르토리코에서 다녔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인연은 82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4년여 가량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친 그는 87년 9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붙박이 메이저리거가 되는데는 3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지명타자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마르티네스지만, 초창기 시절 그를 빅리거로 만든 것은 방망이가 아닌 글러브였다. 85년 마이너리그 서던리그 3루수 부문 수비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었던 마르티네스는 90년 이후 시애틀의 핫코너를 전담했다.

그렇다고 해서 타격에 재능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87년에는 트리플 A 캘거리 캐논스에서 팀내 최고타율(.329)과 최다안타, 최다 2루타 등을 마크했고,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갔던 88년에는 퍼시픽코스트리그 수위타자에 오르기도 했다.

89년부터 본격적인 빅리그 출장을 시작하면서 부족했던 타격에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풀타임 첫 해였던 90년 .302로 3할타율에 턱걸이한 마르티네스는 92년에는 타율(.343)과 2루타(46)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하며 빅리그 최고타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팀은 3년간 1천만달러라는 재계약으로 그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모든 것을 이룰 것만 같던 93년과 94년, 마르티네스는 뜻하지 않는 부상으로 42경기와 89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93년 스프링캠프에서 입었던 오금 부상은 그의 야구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95년 마르티네스는 경기의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다시 리그 수위타자에 등극했다. .356의 타율은 1939년 조 디마지오(.381) 이후 아메리칸리그 우타자 최고타율이었다. 출루율, 득점, 2루타에서도 1위에 올랐으며, 안타와 타점은 2위를 기록했다.

그해 시애틀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의 단판 승부 끝에 지구우승을 차지하며 19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의 상대는 뉴욕 양키스였다. 시리즈 전적 1승2패로 4차전을 시작한 시애틀은 3회초까지 0-5로 뒤지며 벼랑 끝까지 몰렸지만 마르티네스의 한방이 그들을 구원했다. 마르티네스는 양키스 선발 스캇 캐미니키로부터 3점홈런을 뽑아내며 꺼져가던 불씨를 살렸다. 6-6 동점이었던 8회말에서는 존 웨틀랜드로부터 만루홈런을 뽑아내며 승부를 갈랐다.

이날 그가 기록한 7타점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포스트시즌 한경기 최다타점이다. 마르티네스는 5차전에서도 결승 2루타 포함 6타수 3안타로 역전드라마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망이는 멈추지 않았다. 96년 4월21일 토론토전에서 팀 2루타 신기록을 갈아치웠으며, 8월25일 보스턴전에서는 1천안타 클럽에 가입했다. 유난히 좋았던 2루타 페이스는 1931년 얼 웹이 세운 67개의 메이저리그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수비 도중 포수와 충돌 갈비뼈 부상을 입으며 기록 갱신을 뒤로 미루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9월16일 시즌 50호 2루타를 기록하며 2년 연속 50 2루타를 기록한 5번째 선수로 등록했다.

97년 .330의 타율로 리그 타격 2위에 오른 마르티네스는 3년 연속 1백타점-1백득점-볼넷 1백개를 기록하며 95년에 이어 최고의 지명타자에 선정되었다. 올스타 투표 지명타자 부문 1위로 올스타경기에 출전한 마르티네스는 그렉 매덕스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기도 했다. 98년 그는 95년부터 계속된 타율 3할2푼 이상, 1백타점, 볼넷 1백개 시즌을 4년으로 늘렸고, 출루율도 95년에 이어 다시 리그 1위에 올라섰다.

99년 그의 야구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다. 경기중 투수가 던진 공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병원을 찾은 그는 피로와 나이로 인해 오른쪽 눈이 때때로 보이지 않게 됨을 확인했다. 의사는 그에게 은퇴를 권유했다. 하지만 이에 물러설 마르티네스가 아니었다. 마르티네스는 매일 하던 웨이트트레이닝과 비디오 분석에 30분의 안구운동을 더하며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위험에 대비했다. 그 해 마르티네스는 .337로 타격 4위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난해는 그의 어깨에 많은 짐이 지워진 한 해였다. 켄 그리피 주니어가 신시내티 레즈로 옮긴 것이다. 매 시즌 120타점 이상을 올려주던 주포의 이적으로 인해 공격력 약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마르티네스는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145타점으로 타점 1위에 올랐으며, 홈런도 데뷔 후 처음으로 30개의 벽을 넘어 37개를 기록했다.

올해 다시 알렉스 로드리게스라는 기둥 하나가 빠져나갔지만, 현재까지 그의 공격력은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언제나처럼 '공을 어디에 던져야 하나' 할 정도로 상대 투수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으며, 부드러운 스윙으로 총알같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경기장 구석 구석으로 날리며 팀 공격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얼마전까지 동료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파파 만큼 실력보다 저평가되고 저연봉을 받는 메이저리거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마르티네즈의 연봉은 메이저리그 1년차인 스즈키 이치로 보다도 낮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연봉이 아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늦게 메이저리거가 된 관계로 2천안타 정복이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 21일(한국시간) 현재 통산 1,809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그가 2천안타를 넘기 위해서는 대략 2003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선수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그이기에 결코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거가 된 핸디캡을 극복하고 성실한 자세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에드가 마르티네스의 모습은 빅리거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에드가 마르티네즈 (Edgar Martinez)

- 1963년 1월 2일 생
- 180cm, 90kg
- 우투우타
- 연봉 : 550만달러(2001시즌)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1987~ )
- 통산성적 : 1,605경기, 타율 .320, 출루율 .426, 247홈런, 983타점, 1,024득점 1,809안타 1,027볼넷
- 주요 경력 1987년 9월12일 메이저리그 데뷔
- 올스타 5회: 1992, 95~ 97, 2000
- 실버슬러거 3회: 1992, 95,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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