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네이션 피플] 달리는 아줌마 이은숙씨

중앙일보

입력

이은숙(47 ·여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씨의 새벽은 대구 앞산 뜀박질로부터 시작된다.

새벽 4시반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산책로를 따라 10㎞를 달린다.

李씨는 새벽의 숲 속을 달리고 싶은 욕심에 10여년전 앞산 바로 아래로 아예 이사까지 했다.

대구에서 '달리는 아줌마'로 통하는 李씨.

1988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그동안 크고 작은 대회에서 받아 온 메달이 2백개가 넘는다.2년전 달서구청에서 개최한 기네스 대회에서도 최고로 선정됐다.

그녀는 마라톤,중 ·단거리,산악마라톤 등 달리기의 장이 열리는 곳이면 종목을 불문하고 참가한다.

올해만도 전국아줌마마라톤,경주벚꽃마라톤,계룡대마라톤,미8군마라톤 등 6개 대회에 참가해 1등부터 4등까지 고루 입상했다.

그녀는 짓눌린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경북 의성군 도리원이 고향인 그녀는 달리기 전에는 평범한 7남매 집안의 맞며느리였다.

평소 신경성 저혈압을 앓아 시부모 ·시동생들을 포함,10여명의 대가족 살림을 꾸려나가느라 늘 파김치가 돼곤 했다.

학생때 육상대표선수였던 그녀는 어느날 "처져 있는 일상을 달리면서 바꿔보자"며 새벽마다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뛰는 거리가 늘어가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어떤 약도 듣지 않던 지병이 사라지고 감기 한번 앓지 않는 체질이 됐다.

집안에 웃음꽃이 되살아 나고 이웃들을 돌아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녀는 "달리기 대회에 참가해 살림살이도 제법 장만했다"고 자랑했다.

냉장고 ·자전거 ·가스레인지 ·전화기 ·전기밥솥 등 가재도구마다 그녀가 힘겹게 결승점을 통과한 내력을 담고 있다.

대회때마다 받아오는 운동복 ·조깅화 ·티셔츠 등은 가족들이 모두 입고도 남을 정도다.

매년 10차례 이상 전국의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다니다보니 도민체전 등이 열릴 때면 대리선수 요청까지 들어왔다고 털어놨다.부정인 줄 알지만 뛰고 싶은 욕심에 두어번 부정선수 노릇까지 해봤다는 고백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 집안 사정도 나아져 그녀는 요즘 일식집 개업을 준비 중이다.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달리면 복이 와요"라며 외치고 다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