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 김택진, 8000억 매각 이유 밝혀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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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44) 넥슨 사장과 김택진(45) 엔씨소프트 사장이 힘을 합쳐 미국 게임업체 ‘밸브(Valve)’ 인수를 추진 중이다. 밸브는 글로벌 게임 기업 순위 5위 안에 드는 초대형 업체다.

 2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김정주·김택진 사장은 이달 중순 미국 하와이에서 만나 밸브사를 공동 인수합병(M&A)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넥슨이 비공개로 하와이에서 연 ‘개발자 서밋’에서였다. 넥슨의 엔지니어들이 모여 차세대 게임 개발 방향을 논의하는 이 자리에 김택진 사장도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두 사람이 서밋 전후 따로 만나 밸브사 M&A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전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왼), 김정주 넥슨 사장

 밸브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총쏘기 게임 ‘하프 라이프(half life)’를 만든 회사다. 게임 내려받기 서비스인 ‘스팀(Steam)’ 역시 운영하고 있다. 스팀은 전 세계 회원이 4000만 명에 이른다. 현재 세계 PC용 게임 내려받기의 70% 이상이 스팀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두 사람이 밸브를 인수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 ‘스팀’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스팀을 인수해 게임 제작뿐 아니라 전 세계 보급망까지 갖추려 한다는 것이다. 박용후(46) 카카오톡 커뮤니케이션 전략 고문은 “인수에 성공하면 개발부터 판매까지 자체 게임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밸브는 세계 대형 게임업체들의 주목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김정주 사장 역시 밸브에 관심이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달 초 대구에서 열린 강연에서 “세계 각국의 회사들을 두루 둘러봤지만 시애틀에 있는 밸브사를 방문했을 때 가장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넥슨이 당장 수익은 나고 있지만 세계 게임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IP)과 비즈니스 방식을 보면 부럽다”고 한 바 있다.

 밸브 인수 가격은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축구게임 ‘FIFA 시리즈’를 만든 미국 게임업체 EA가 올해 밸브 측에 10억 달러(약 1조1200억원)에 인수를 제안했던 것을 근거로 한 추정이다.

두 사람은 이 정도 현금을 이미 마련해 놓은 상태다. 김택진 사장은 지난 6월 개인 소유였던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8045억원을 받고 넥슨에 팔았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택진 사장에게 왜 이렇게 막대한 현금이 필요했는지를 놓고 M&A를 위한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나왔었다. 김정주 사장은 이에 대해 “둘이 합쳐 덩치를 키운 뒤 해외 공략에 나서겠다”고 했다.

 넥슨 역시 지난해 3월 매입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메리츠타워 인근 부지를 지난 7월 매각해 13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국내 대표 게임회사다. 넥슨은 지난해 1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엔씨소프트는 6089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은 넥슨이 많지만 개발 기술은 엔씨소프트가 한 수 위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넥슨은 매출의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메이플스토리’ ‘서든어택’ ‘카트라이더’를 통해 M&A를 선보인 반면,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을 만들어 히트시켰다.

박태희 기자

◆ 밸브(Valve)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일하던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이 1996년에 창립한 게임 제작사. 98년 FPS(first person shooter·1인칭 총쏘기) 게임 ‘하프 라이프’를 내놓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하프 라이프는 그해 국제 게임 전시회 등에서 주는 상 50여 개를 받았다. 이후 ‘카운터 스트라이크’ ‘팀 포트리스2’ ‘포탈’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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