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재정+경기부양 ‘묘수’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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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아끼면서 화끈하게 쓰겠다?

 이건 ‘둥근 네모’나 ‘뜨거운 얼음’ 같은 표현처럼 모순이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일정 정도 이걸 해냈다. 균형재정 기조를 지키면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화했다. 곳간을 지키면서도 내년 경제를 부양해야 하는 상충되는 목표,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토끼를 다 잡겠다는 뜻이다. 신해룡(호서대 교수) 전 국회 예산정책처장은 “건전 재정은 우리 경제의 안전판이며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원”이라며 “균형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정 지출을 전년 수준으로 편성한 것은 적절한 재정운용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이게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은 재정운용 방식의 개선 덕분이었다. 예산 대신 금융회사 돈을 빌려 쓰고 이자 일부만 갚는 ‘지렛대 방식’(융자지출의 이차보전 방식 전환)이 도입됐다. 그만큼 재정엔 여유가 생겼고, 경기대응과 지방지원 등에 더 쓸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이를 ‘창의적인 해법’이라고 자평했다. 그렇다면 과거 예산 관료들은 창의적이지 못했다는 얘기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지렛대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성이 있을지 당국도 자신하지 못한다. 이 방식을 쓰냐 안 쓰냐에 따라 ‘실제’ 총지출 규모가 들쑥날쑥 달라진다. 이런 널뛰기가 재정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당장은 이자 일부만 주면 되니, 수조원이 남는 것 같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자만 갚는 지렛대 방식이나 뭉칫돈을 빌려주는 융자지출 방식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엔 뭉칫돈이 나가지만 융자지출은 몇 년 뒤엔 다시 회수된다. 당장은 이자만 나간다고 인심 쓰거나 허투루 쓸 돈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부는 균형재정과 경기 방어라는 두 토끼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까. 일단 균형재정 약속이 당초보다 못하다. 기획재정부는 예전에 “한 푼이라도 내년에 재정 흑자를 내겠다”고 공언했었다. 그게 국내총생산(GDP)의 0.3% 적자로 달라졌다. 물론 정부 얘기대로 이 수준이면 국제기준으로도 균형재정 범위 안에 있다. 그래도 1원의 흑자와 4조8000억원의 적자는 엄연히 다르다. 정부가 ‘내년 균형재정 달성’ 대신 ‘내년 균형재정 기조 유지’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마저도 내년 4%의 성장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최악의 경우 내년 경제여건에 따라 두 토끼를 모두 놓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정부가 큰돈 들어가는 보육과 대학등록금 예산에서 기준과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아직 끝은 아니다. 선거를 앞둔 국회라는 큰 고갯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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