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과, 부동층이 판가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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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4일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박 후보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구국의 결단’에서 ‘헌법가치의 훼손’으로.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접근이 확 바뀌었다. 박 후보는 2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본 분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저 역시 가족을 잃은 아픔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로서 공식 사과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두 개의 판결’ 발언을 계기로 과거사 논란이 불거진 지 14일 만이다.

 그는 또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도 했다. 이어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를 비롯한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박 후보는 5·16이나 유신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당시의 공(功)과 과(過)를 함께 언급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5·16에 대해 “구국의 결단”(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2012년 7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 토론회)이라고 평했다. 유신에 대해서도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이날 회견에선 박정희 시대의 공보다는 과에 무게를 둔 평가를 내놨다. 특히 ‘헌법가치 훼손’이란 대목은 과거와 크게 다를 뿐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정통성까지 건드렸다는 분석이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회견 직후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수위의 발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한번 피력한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는 스타일이다. 과거사 평가도 그랬다. 하지만 이후로 계속된 지지율 하락이 그의 방향 전환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국면 초반 승부처로 여겨지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야권 후보의 상승세를 막을 수 없다는 주변의 조언도 박 후보의 변화를 이끌어 낸 요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회견이 얼마나 효과를 냈느냐를 따지기엔 아직 이르다. 일단 유신체제 피해자나 유가족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부정했다. 반(反)박근혜층에는 먹혀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야권에선 사과 자체에 대해선 평가하되 향후의 후속조치를 촉구하는 ‘절반의 평가’가 대세다. 결국 그의 사과에 대한 최종평가는 부동층의 표심(票心)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단국대 가상준(정치학) 교수는 “박 후보가 5·16과 유신에 대해 헌법가치 훼손이라고 평가한 것은 의미 있는 인식”이라며 “하지만 앞으로의 행보에서도 진정성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해야 부동층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 초반 “오늘은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제18대 대통령 후보로서 과거사와 관련해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계 핵심 관계자는 “박 후보의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그동안 딸 입장에서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대선 후보 자격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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